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어나더+ 아이함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82

세 식구


BY 개망초꽃 2004-03-01

올 해 주민등록증이 나온 딸아이 상아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아이 상윤이와
사십이 넘은 나와 집에서 번갈아 목욕을 했다.
서로 뽀샤샤한 얼굴로 어떤 비디오 볼까 물으니
동생도 볼 수 있는 만화영화 보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이것보다 먼저 오늘은 찜질방을 가서 저녁엔 냉면을 먹기로 했는데
가만히 돈 계산을 하니 이게 아닌데싶어 딸아이를 살살 꼬셨다.
찜질방가면 만오천이 들고,냉면 먹으려면 또 만오천원 들고 합 삼만원이니
우리 형편에 너무 과한 것 같으니
집에서 욕탕에 뜨거운 물받아 목욕하고 비디오 빌려서 보고
저녁은 삼겹살 구워 먹고 밤참으로 떡라면 끓여 먹자고...
평소에 나답지 않게 아주 조용히 이쁘게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더니
딸아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아이 누나하는대로 따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삼만원에서 삼천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삼겹살은 매장에서 팔던 짜투리 고기였고
비디오 빌리는 값 천원,커피우유 두 개와 감자칩 하나 천칠백원,온수값 정도...

각자 베개 하나씩을 끌어 안고 비디오를 봤다.
웃어가며 놀래가며 감동 받아가며 만족하고 편하게 밤시간을 보내고
밤참으로 떡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서로 약속도 안했는데 책 한권씩 들고 각자 편한 폼으로 책을 보았다.
상아는 어릴적에 본 위인전기를 읽고 상윤인 돌아온 백구를 읽고
난 신경숙님의 깊은슬픈 하권을 읽었다.
상아는 책 정리를 한다면 책꽂이를 뒤적이더니 내 처녀적 앨범을 꺼내왔다.
"예쁘다. 엄만 키가 크고 날씬해서 더 예뻐."
"그러니?"
"옷도 참 예쁘게 입고 다녔네."
한참 내 사진을 보더니 또 뒤적뒤적 뒤적이더니 오래된 퍼즐을 꺼내왔다.
"상윤아 우리 퍼즐 맞추기 하자."
엄마랑 자겠다던 아들아이는 엄마 혼자 주무세요 미안해요
그러면서 졸래졸래 누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더니
둘이 조근조근 얘기를 하는 게 밖으로 세어나와 나의 가슴을 포근하게 만져 주었다.

가난하지만 우리 세 식구는 그리 가난하지만은 않다.
한쪽 바퀴가 망가진 달구지지만 우린 천천히 쉬어가면서 걸어간다.
가슴에 하나씩 상처 자국이 남아 있지만 우린 흔적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상아 핸드폰이 망자져서 새로 핸드폰을 사줬는데
카메라폰이 달리지 않은 제일 저렴한 거로 사 달라고 하는 상아.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니 커메라폰 달린 걸 사줄걸 마음이 아파진다.

한쪽 바퀴가 없어 세 바퀴로 달려가려니 서로 금방 쓰러질것 같이 힘들어도
우린 서로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내가 더 힘들다는 말을 안한다.

상아는 상아대로 사춘기라서
상윤이는 어리면 어린대로 각자의 상처가 커서 곪고 있을지라고
우리 세 식구는 더 이상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나는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얼굴을 대고 크게 숨을 쉬었다.

이대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이만큼도 다행이지 않은가?
내일 걱정은 내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