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지인들이 한국을 방문한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부산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라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남포동으로 갔습니다.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부산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용두산 공원엘 갔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꽃시계도 화사하게 피어나고 저 멀리 아스라히 떠있는 영도대교까지 그윽한 밤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통역을 맡은 학생이 밤 풍경에 매료되었는지 용두산 공원은 청춘 남녀들이 데이트를 하며 사랑고백하기 좋은 곳이라는 말을 했나봐요.
그러자 일본사람이 저에게 ' 한상(제 남편의 성씨)은 어디서 고백을 했나요?
여자들은 그런 상황을 영원히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잖아요."
하며 물었습니다.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보니, 갑자기 머리 속이 아득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남편과 같이 갔던 송정 바다가 떠오르기에
"송정 바다에서 했지요." 하고 말았어요.
그러면서 하하호호 웃으며 일행을 숙박지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와서 카페에 들어갔지요.
오늘 일과를 보고 하기 위해 카페에서 남편과 만나기로 했거든요.
이런 저런 얘길 하며 사랑고백에 대한 얘길 하니 남편이 단박에 샐쭉해지는 겁니다.
나는 너와 한 모든 추억을 다 기억하는데 너는 어쩜 그럴 수 있나면서 화를 내는 겁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런 말이 나왔어. 당신과 함께 거닐던 겨울바다가 생각나서 말이야 .' 했더니, 다른 남자와 함께 간 적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하기에 이러쿵 저러쿵하며 서로 싸웠답니다. 생각없이 한 말 한 마디가 나를 옭아매는구나.
송정에 같이 간 남자가 있어야 덜 억울하지 하면서 남편과 티격태격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세상이 좁아지다 보니, 타국에 있는 남편과도 사소한 일로 감정을 낭비하며 싸웁니다.
한참을 말싸움하다가 결론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끝났지만 좀 찝찝하네요.
사실 남편은 저에게 이런 말로 고백했거던요.
대학시절 대학신문을 저에게 보내며 그 속에 다 이런 메모를 했더군요.
"비익비목지교" 라구요.
무식한 저, 한참이나 뜻 해석한다고 고민했습니다.
비익비목은 전설상의 새와 물고기랍니다.
비익은 날개가 하나만 있는 새로서 두 마리가 가지런히 합쳐야만 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목은 눈이 하나라서 같이 암수가 서로 붙어야 볼 수 있는 물고기랍니다.
그래서 비익과 비익은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 그런 부부 관계를 나타낸 말입니다.
남편은 저에게 영원히 서로 함께 하자는 뜻으로 사랑을 고백했는데, 저는 세월이 좀 흘렀다고 딴 소리 했으니 속에서 불이 올라 올 만도 하죠.
근데 전 왜 이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아직도 아리송송해요.
제 사랑이 식은 걸까요? 아님 건망증이 심해진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