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들려주는 소리.
길,바람,아이,들판,나무,바위 그리고...
떠나기...
작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긴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아주 엄격하구요.
넓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아주 인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거침이 없어서 아주 도전적이고,
대륙에서 부는 바람은 활검(죽은 생명을 살려낸다는 검법의 마지막 단계)
처럼, 대지를 다독이며 붑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산들바람.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셋바람.
그리고...
나의 오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갈바람.
산에 가면 나는 어김없이 낮잠을 자고 길을 간다.
"이정표가 왜 있는걸까?"
"음...길손들의 마음을 달래 덜 힘들라고."
"스님들은...이런 이정표도 없이 수행해야하니...얼마나 힘들까?"
산 중턱 어디에나 널려 천년의 소리를 간직한
바위 위. 에. 서.
그러면, 바람이 바위를 스치며
저 산 너머 소식을 전해주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몸이 냉기를 느끼고 눈을 살며시 떠 보면,
내 머리맡 바위위에 구름이 내려와 있고,
작은 종달이 무릎위에 내려앉아
잠든나를 지켜준다.
바람소리를 들어보면,
저승의 사자 소리도 들리고,
죽은 자의 함성같은 소리도 들리고,
그리고...몹시 사랑할 사람의 얼굴도,
몹시 증오했던 사람의 얼굴도 보입니다.
들리지 않고, 보.입.니.다.
저는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좋아합니다.
어쩐지, 바다를 건너, 들판을 지나, 그리고
저 가난한 초가지붕 위를 맴돌다 들은 소식도 있는것 같고,
도시를 지나 마른 목소리들이 너울대는 도심에 지쳐 다시 산으로...
작은 산 넘으면서, 논밭두렁의 고추도 만져보고,
고구마 줄기도 들춰보고,
그리고 들은 가난한 시골의 농부들의 한숨소리를 듣고,
눈물 뚝뚝 떨구며, 다시 긴 여행을 해 온것 처럼.
때론, 엄하고.
때론, 다감하고.
때론, 가녀린 산들 바람을 좋아합니다.
겨울 바람은 잠든 대지가 영원히 잠들지 못하도록 경각시키기 위해서
우렁차고 우람하게 불어옵니다.
봄바람은 대지를 다독여 이제 때가 되었노라고 선잠든 어린아이를 깨우듯,
살랑살랑 어르며 붑니다.
여름바람은 태양이 지치면 잠시 비추고 제 갈길 가는 인정없는 바람처럼 불고요.
그리고...
가을 바람은, 대지의 모든 사물과 조화로이 불어옵니다.
낙엽을 굴리고, 곡식을 쓸어주고, 아낙의 이마도 닦아주면서...
나는 가슴속에 증오가 일어나면,
산으로 갑니다.
바위에게서 관용을 배우고,
산들 바람에게서 위로를 받기 위해서.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 처럼
슬프고 아픈일은 없을 것 입니다.
도영님의 아버지!.
큰돌님의 아버지!.
마야의 어머니!.
피로 맺어진 인연으로 업을 지어가는 그런...
증오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바람에게 묻습니다.
증오할 가슴으로, 나를 사랑할까?.
라고 말입니다.
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