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쌀을 씻을라 치면 영감은 목청을 돋우어 소리를 지른다.
"쌀뜸물 받아?"
"그럼요. 매일하는 걸 뭘 매일 물어봐요."
부엌에 들어서면 뽀얀 쌀뜨물을 양푼으로 하나 받아놓았다.
저녁 샤워 중에 세수를 하려고 받는 걸 봐서, 영감은 시키지 않는 날도 찰랑찰랑 받아 놓는다.
"아이고~. 우리 아빠는 못 말려."
이실직고를 하자면 누구라도 우리 식구는 시키지 않아도 반드시 쌀을 씻을 땐, 쌀뜨물을 받아 놓는다.
그건 내 새숫물이다.
쌀 뜨물에 영양분이 많이 첨가 되어 있어서 얼굴에 따로 영양분을 쓰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다. 그래서 일까. 예쁘다 소리는 못들어도 피부가 좋다는 소리는 늘 듣고 산다. 과년한 딸들이 있어도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고가의 영양분을사서 쓴다. 어디를 봐도 쌀뜨물이 고가의 영양크림을 대용한다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쌀뜨물이 내게는 고급 영양크림의 대우를 받는다.
영감도 밥쌀을 씻어 줄량이면 뜨물을 받아놓는다. 영감이야 마누라가 값비싼 영양분 대신 쌀뜨물을 쓴다는데 손해 볼 것 없질 않겠는가. 몇 십 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젠 아주 버릇이 됐다. 그렇게 내 뜻을 잘 받아주던 영감이 언제부터인지 쌀뜨물 받아주는 것에 심드렁하다. 허긴. 이제는 내가 한가롭게 살아서일까? 나도 예전처럼 쌀뜨물에 그리 목을 메이지 않게 되었다.
''여보. 요새 왜 쌀뜨물 안 받아 줘요?''
"이젠 그런 거 할 나이 지났잖아?"
"헉~! "
"됐네요 이젠. 쉽게 살아요." 흑. 영감 눈에도 내가 이젠 많이 늙어 보이는가 보다. 나도 이런 때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