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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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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기


BY alice 2004-02-27

 

아이를 둘 낳고보니 이제는 아이 낳는일이 두려운 일이란걸 알겠다.

아니 첫아이 낳고는 알았다. 첫 아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준비도 없이 그렇게 낳았다. 그래서 후유증도 컸지만 둘째 아이는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근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병원에 가면 누가 큰 아이를 돌봐줄까?
시부모님은 차로 12시간 이상을 가야하는데 노인분들이 산후조리로 오신다는건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고 게다가 두분다 운영해야할 가개가 있으니 오시기 힘들것이고. 이웃이나 교회에 아는 이들에게 급하게 연락해서 아이를 맡겨야 할 형편이었다. 아이는 이제 세돐쯤 됐으니까 미리부터 아기의 출생에 관한 책을 많이 읽혀서 두었다. 그래서인지 알아들은 눈치로 아기가 언제 거꾸로 될것이지 묻기 시작했다. 한가지 문제는 해결된듯도 한데...또 다른 고민이 꼬리를 물고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통이 오면 누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큰 아때는  다행히 새벽에 진통이 와서 남편과 병원에 갔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이니 모든 처리를 했고 그때는 레지던트를 하던 시기였으니 빠져도 그다지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런데 병원 사무실을 나가기 시작했으니 대낮에 진통이 시작되면 사무실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근심이 깊어갔다. 남편이 일하다 나오면 기다리고 있던 환자는 누가 돌볼 것인지 난 걱정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악몽까지 꾸기 시작했다. 8개월쯤 되었을때 잠자는 남편을 깨워 훌쩍이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두려움에 대해서. 남편은 괜찮다고 다른 의사들이 대신할거라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차라리 아이를 주말에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는 조카는 누가 학교에 데려다주지?
조카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내가 큰아이와 함께 통학을 시켜주어야만 했다.  조카와 큰아이 그리고 아기까지 있는데 남편은 휴가를 낼 형편이 아니었으니 어쩌겠는가 서울에계신 친정 엄마가 오시기로 했다.미역국이라도 먹으려면 미국 사람보다는 친정엄마가 와 계시는게 낳다는 결론에서.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친정엄마는 오셨는데 시차적응을 못하셔서 예정일이 다되도록 낮과 밤을 거꾸로 사셨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아이만 기다리시다 지쳐서 파와 쑥갓 그리고 부추 씨앗을 뿌려놓고 농사를 시작하시고. 난 밤마다 진통을 앓았다. 그래도 예정일이 다되도록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어쩐일인지.. 

아마도 나의 걱정이 지나쳐서인지 어쩐지..

 

난 남편도 없이 혼자서 유도 분만을 하기위해서 운전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에는 남편이 오전 근무만 있는 날이어서 오후에 진통이 시작될 무렵 남편이 도착했다. 그제서야 난 안심을 하고 마음놓고 아이를 낳을수 있었다. 세상에!  둘째 아이는 진통이 적을줄 알았는. 모두들 둘째는 굉장히 쉽다고 하길래 믿었더니 수~~운 거짓말.  난 마취제를 두방이나 맞았다..그러고도 아이는 나오지 않고 머리만 반쯤 세상에 내어밀고는 엄마를 힘들게해 어쩔수없이 아이를 뽑아내다시피 해서 겨우 세상에 나온 아기..히유~~~

 

첫아이때 친정 어머니는 분만실까지 들어오는 여유를 보이셨다. 그런데 마취주사를 놓는 것을 본 우리 친정어머니 놀라서 후유증으로 머리가 몽땅 빠지셨다고 한다. 출산한 딸에게 말도 못하시고 혼자 고민만 하셨던차라 둘째 아이는 너희끼리 가서 낳으란다. 큰아이와 집에서 있겠다고.

 

병원으로 찾아온 친정엄마와 큰아이는 풍선까지 들고 들어오는 여유를 보였다. 함께 떠들고 웃고 아기와 사진찍고 그리고 겨우 돌려보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되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온게 아닌가! 도저희 집에서 못자겠다고. 큰아이도 너무 울고 자기도 마음이 심란해서 다시 돌아온 남편과 아이. 결국에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든 아이를 업고서 병원을 나서 집으로 갔다. 아침일찍 환자도 봐야하고 병원에 들러야한다고 다시 온 남편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집에서 몇시간 눈을 붙였으니 좀 났겠지..

 

누워있는 중간중간 모유 수유를 위해서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와 모유 먹이는걸 도와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다시 유아실로 데려가곤 했고.모든것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친정엄마는 미역국도 못먹고 아이 수유를 한다고 보온병에 미역국을 담아 보내셨다. 아마 첫아이때도 아이낳자마자 차가운 쥬스를 내미는 미국 병원이 속상하신듯 지켜보셨으니 그때의 기억 때문인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둘째 아인데 나 또한 이제는 아이 낳자마나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는 여유를 보이고 병원 음식도 맛있게 먹었으니. 메뉴도 따뜻한 파스타나 고기 종류로 골라서 먹고.

 

이틀이 지나고 남편이 퇴근한 후에야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천천히 준비를 끝내고 아기도 옷을갈아입히고 준비하고 있으려니 휠체어가 왔다. 집에 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남편 왈 "당신 차가 차고에 있는데 어쩌지?”

융통성도 없는 남편은 부탁할 사람도 못찾고 내 차를 그저 차고에 넣어 두었던게다. 걸음을 걸을만하니 운전은 할만하냐고 묻는다.

"그저 그래..”

"그럼 차가지고 올께" 하더니 내차를 가질러 차고로가고..

그리하여 난 내차를 운전하고 남편은 아기와 함께 가고 집에 도착했더니 친정엄마는 기절 직전이시다. 산모가 운전을 한다고. 난 어자피 한 일주일 지나면 운전할건데 뭐..이러면서 얼버무리고.

 

우리 동네에서는 동양인이 우리집뿐이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는다고 한국에서 친정엄마가 오시고 난 한달이 다되어가도록 밖에 나오지 않으니 미국 풍습과는 영 달라 소문이 무성했나보다. 큰 아이의 손에 이끌려 밖에 나가니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죽겠단다. 언제나 아기를 볼수있는지.. 그래서 간단히 한국의 풍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백일에 대해서도. 물론 백일까지 기다려야 하는건 아니지만 조금있으면 아기를 볼수있다고 얘기해주니 이웃집 아줌마들은 산모가 일을 안하는 것은 정말 좋단다. 사실 아이낳고도 일주일이상 쉬는 이가 별로 없으니..나는 호사를 하는 편이라 생각하겠지만.  밖으로 다니지는 않았지만 어찌 집안일을 친정어머니 손에만 맡게 놓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기를 갓 낳아서 아픔보다는 커다란 기쁨이 나를 휘감고 코끝이 찡하게 눈물이 돌던 순간은 잊을수가 없다. 이렇게 엄마가 힘들게 되는 거구나 하고. 남편 또한 산고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첫아이때는 19시간을 둘째때는 6시간을 함께 했으니 고통을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화장실도 못가도 밥도 못먹고..


첫아기를 낳았을때에 남편은 병원에서 아기를 안고 속삭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도 아니 이제 몇시간 밖에 안지난 아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비디오를 집어들고 찍어 두었는데 나중에 함께 보았는데 남편은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곤 가끔 비디오를 꺼내어 본다. 그래 우리가 저렇게 부모가 되었지..지금 우리가 힘들어하는 일들은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면 견딜수 있는 일이야 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곤한다. 출산의 고통이 잠시라면 아이와 함께 지나는 많은 시간들은 기쁨을 주기도 하고 많은 책임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도 하는데 우린 어떻게 힘을 합하여 살아갈수 있을까라고 서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