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저는,
사계절 푸른 뒷곁 대나무 밭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대밭에 웅크리고 앉아있으면.
봄에는 사각거리는 대 나무잎이 발 아래에서 오물거리고,
여름에는 쉬~이~쉬!. 차르르르. 바람이 지나고,
가을이면,쐐~에,쐐~에,썰물소리를 내며 지나고,
겨울이면, 프드득~.장끼가 잠시 내려왔다가 놀라서 뒷걸음질 치는.
사계절 내내.
동네 아이들, 구슬치기, 딱지치기, 머리핀 따먹기,
하느라 바쁠때, 저는 그 대나무 잎을 스치고 지나며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대나무 숲이 좋아서,
늘 그곳에 책 한권 끼고 틀어 앉아 시간을 보냈지요.
턱을 괴고 앉아 눈을 살며시 감아 보면,
사르륵!. 사르륵!.
작은 요정들의 발소리같은 소리가 바람이 대나무 잎을 스치면서
지나갑니다.
그리곤...
살포시 포갠 나의 팔에 엎디어 잠이 듭니다.
그러면,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포근히 잠이 든 것 처럼,
얼마나 포근했던지.
대나무 잎으로 작은 수저도 접고,
대나무 잎으로 책갈피도 만들고,
대나무 잎으로 머리를 꼬아 퍼머머리도 만들고,
대나무 잎으로 떡시루 구멍도 막고,
그리고...
대나무 잎으로 봉창도 장식했던,
그 시골집 장성에는 이젠, 노령의 어머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계십니다.
아버지도.
딸도, 아들도 없이,
넓은 앞마당엔 백구와 누렁이만
엉덩이를 실룩이며 걷고 있겠죠.
유년시절에는 꿈을 섬기고,
청년시절에는 영웅을 섬기고,
중년이되면, 옛날을 섬기는 모양입니다.
노년이 되면, 무엇을 섬기려나?
아마도...
하늘을 섬기고,
계절을 섬기고,
순리를 섬기겠지요?
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