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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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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짱 앞에서 부끄러운 맘 꽝 (미용실 이야기 32 )


BY 명자나무 2004-02-26

아침이면 늘상 먹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요즘 웬지 몸 상태가 안 좋은것 같아서 종이컵에 커피 몇알 집어넣고 전기장판이 뜨끈뜨끈하게 데원진 의자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 앉아 편안하게 한모금씩 마시는 중이다.

털털털 하는 전동 구르마 소리가 요란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만으로도 야쿠르트 아줌마가 오고 있다는걸 알고있다.

전동차를 세워 놓은 뒤 비닐봉지에 야쿠르트를 주섬주섬 담아서 바로 윗집으로 배달해주고는 으례히 웃는 얼굴로 들어온다.

아직 커피도 다 마시지 않았는데 아줌마 손에는 그 회사에서 나오는 슈퍼백이 두개 들려있다.
커피나 마시자고 손 사래을 치면서 슈퍼백은 갖다두고 오라고 하니 미리 뚜껑을 띁으면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일인데 하나씩 먹고 하자며 실실 웃는다.

말일이 다가오니 수금은 잘 되가느냐고 물어보니 안그래도 요즘 수금이 안되서 죽을맛이라며 수금만 하지 말라고 하면 야쿠르트도 할만하다고 한다.
이 아줌마가 공자님같은 소리만 하지 말고 얼른얼른 수금이나 잘할 생각하라고 하니 글쎄 그게 큰일이라고 한다.
요즘 불경기라서 한달 내 유제품 배달 해주고는 수금 해달라고 얼굴보고 얘기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 달 까지만 배달하고 조금 쉬었다가 먹겠다니 돈달라고 말하다간 그나마 몇 군데 안되는 배달 코스가 사라질 판이니 얼굴 보고 말하기가 진짜 겁 난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말일이 다가오니 웬 공과금이 이리 많은지 알수가 없다면서 한 가지씩 헤아리는데 수도세 전기세는 기본이요 아저씨가 화물차를 운전하시는데 화물차 사무실비며 적십자회비까지 열 손가락도 모자르게 생겼다.

쥐꼬리 만큼 벌어서 공과금이나 다 낼수 있을런지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향해서 적십자회비도 내? 그건 뭐하러 내는데? 내지 말라고 말리는 소리에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건 내가 내고 싶어서 ..말꼬리를 흐린다.

형님네가 금촌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는데 몇해전에 금촌에 큰 물난리가 났을때 제일 먼저 와서 도와주고 밥해준 사람들이 적십자 회원들이었다면서 그때 정말 고맙고 큰 힘이 되었단다.

불이 나면 타다 남은거라도 있을텐데 물난리가 나버리니 다 쓸어가버리고 남은건 으스스 몸 떨리는 한기밖에 없을때 뜨근뜨근하게 김 나는 밥을 지어서 아무때나 먹고싶은 만큼 먹으라고 하니 온 동네사람들은 물론이요 딴 동네 거지들까지 와서 잘 먹고 갔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배부른양 눈이 반달이 되어서 웃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자기는 시간도 없고 어떻게 적십자 회원이 되는지도 몰라서 적십자 회비만큼은 아낌없이 내려고 마음을 정했다면서 예전에는 삼천원과 오천원 사이에서 골라 내도록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오천원으로 정해졌다면서 "그것도 인상됐네" 한다.


서울하늘아래서 아마도 자기네 집세가 제일 쌀것이라면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난방비만 많이 들지 집안은 냉랭해서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그녀의 집.
아이들은 셋이나 되어서 한시라도 돈이 바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는 그녀에게 하물며 돈 오천원이 작은 돈이 아닐텐데도 그것도 밀렸다면서 이번달은 만원을 내야 한다면서 다 식어빠진 커피를 한 모금에 털어넣고는 흰 면 장갑을 끼면서 일어난다.

빨리 배달하고서 은행 다녀와야 한다면서 휭 하니 나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라도 적십자비 내지 말라고 말렸던 내 경솔함을 주섬주섬 주워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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