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5

마닐라로 띄운 기별..♡


BY 산,나리 2004-02-26

 

 

지난 주말에는 이틀동안 비가 뿌리더니..

오늘은 잔뜩 찌뿌린 회색빛 하늘에다 간간히 창문까지 덜컹대는

바람까지 합류했다.


봄이 오긴 오려나 보다....


사랑스런 내동생아~

잘 있는거지?

전화 통화보다 이렇게 글로 써서 전자 우편이지만 보내는 맛이

훨씬 우애가 넘쳐 보이지 않니...? ..히.


오랜만에 네게 보낼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좀 이르긴 하지만 이곳의 계절 감각을 느끼게 해 너에게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려는 큰누나의 깊은 베려라고나 할까...??


꼭 봄이 시작되려면 밖으로 나오려는 싹들을 강하게 배출해 내려는

계획된 강행군처럼 모질게도 날씨가 나날이 변화무쌍하다.

열심히 주어진 섭리에 잘 따라하는 메마른 가지들은 제법

이리 저리 휘둘리며 잘 버티고 있다.

보송보송 솜털로 감싸여진 움들은 ‘ 나 여기 있어요 ‘ 하는 조카녀석들의

숨바꼭질을 구경하는 것 마냥 마음 조마조마하게 지켜 보고 있다.


개나리 울타리 밑의 노란 병아리떼 같은 니 딸,아들은 그야말로

개나리 노오란 꽃잎이고 뒤뚱뒤뚱 병아리가 흡사하다.


지난번 할아버지 제사에는 윤이녀석이 니를 대신해서 어찌나

절을 나붓 나붓 잘하던지 우리 할아버지는 아마 하늘에서

오냐 대답하시고 한잔 술 하시고 껄껄 웃으시고 한잔 하시느라

모르긴해도 거나하게 취하셨을게다.


수십년전 니가 고향 마당 한가운데서 응가를 하는 모양새를

마루 한가운데 앉으셔서는 ‘ 우리 손자는 응가도 복스럽게 하지...‘ 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사랑법이 떠올랐다.


네 살을 맞아 드디어 앞가림(대소변)을 하게 됐다는 꼬리표는

영원히 따라 다닐 치명적인 오점으로 이 고모가 접수 해놨다.


관악산 자락에 따스한 봄볕이 내리 쬐는 어느날 잡아 그녀석들을

밖으로 몰고 나와 너네 집뒤 관악산 초입 동산에 올라 나비도 보고

풀꽃도 꺾어 볼까 싶다.


계절의 변화가 없다는 그곳에서 행여 헤벌쭉 늘어진 넙죽한 나뭇잎 모양..

강열한 열기로 늘어진 아스팔트 길 모양.. 무감각 해질까봐..

서울의 이른 봄 소식을 전한다.


어릴적 니가 막대 휘두르며 뛰놀던 고향 마을의

개머리 들녘의 생생함 만큼이나

동네 공원이라 말할 수 있었던 잘 다듬어진 연습림 나무아래

여유로운 그늘처럼 늘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싱그러움을 지녀

몸도 마음도 지치지 말고 건강 유지하고 다부지고 똑부러진

효자 아들로, 다정다감하고 정스러운 남편으로, 아빠로, 동생으로,

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자주는 못해도 계절이 바뀌면 바뀌어 간다고 한번씩 전하마.

참, 그리고 사십대로 올라 온 것 축하(?)한다. 다행히도 이누나가

아직 ‘4’자에서 미끄러지지 않아 잠시 동질감을 느껴 보겠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일들을 할수 있는 화려한 절정기가

사십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쪼록 안전에 안전을 기하고 내실을 튼튼히 하는 어엿한 중년의

가장으로 건강 잘 지키며....잘 있거라 ~ ~

    

                  2004, 2, 25                서울에서 큰누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