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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 이야기


BY candy 2004-02-25

 한 때 항간에 떠돈 우스개 소리 중에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이란 얘기가 있지요.

 국수의 재료는 밀가루고, 국시는 밀까리고예.

국수는 봉투에, 국시는 봉다리에 담아서 팝니더.

 국수 맛은 혓바닥으로 보고요, 국시 맛은 샛바닥으로 맛을 봐야 제 맛을 안답니더.

 국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국시는 목구녕으로 넘어가지예.


 오늘은 국수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국수 하면 어릴 적, 동네 앞뜰 방앗간 옆 공터에 빨래처럼 널려 있던 뽀얀 국수가닥이 떠오릅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 주전부리가 생각나고, 입이 궁금해지면 방앗간 공터로 달려 가 주인 몰래 국수 가닥을 끊어 먹곤 했지요.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햇살에 꾸득꾸득해진 간간한 국수 맛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답니다.

 

 그런데도 저는 삶은 국수는 무척 싫어했답니다.

왜냐하면 여름철 점심 메뉴는 항상 국수였으니까요. 질릴 만도 하지요.

더운 여름날 끼니를 장만해야 하는 일이 주부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걸 아줌마가 되고야 알았습니다.

울 엄마는 점심 때면 항상 국수를 삶았습니다. 장독대 옆 마당에 솥단지 걸어두고 삶아 낸 국수 가닥, 그 하얀 가닥을 돌돌 말아 소쿠리에 담던 엄마의 손놀림이 떠오르네요.

 

 잔파 송송 썰어 넣고, 고추가루 풀어넣고, 풋고추 다져 양념한 간장을 끼어 얹어 먹는 국수.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 앉아 목구멍으로 훌훌 넘겨도 저는 싫었답니다.

우리 집에서 국수를 안 먹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울 아버지.
아버지는 위가 안 좋아 항상 진밥을 드셨거든요. 젊은 날 결핵을 앓아 오랫동안 약을 드신 탓에 위궤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항상 진밥을 드셨답니다. 싱겁기만 하고 맛없는 진밥. 그래도 저는 국수보다는 낫다며 아버지와 겸상을 한 기억이 납니다.


 국수 먹는 일에 질린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국수를 잘 먹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입맛도 바뀌나 봐요. 요즘 저는 가끔 국수 한 그릇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답니다.

그런 날엔 다시 멸치를 넣는 국물에 어묵이나 양파를 썰어 넣지요. 국수 삶을 물이 끓을 동안, 김장김치를 다집니다.

그 속에 레몬식초 한 큰 술, 물엿, 참기름, 통깨를 적당히 넣고 조물조물 무칩니다.

살짝 삶은 국수에 뜨거운 다시 국물을 붓고, 김치를 얹어 먹으면 참 별미랍니다.

 오늘은 종일 비가 오는군요.

이런 날 소면을 삶아 국시 만들어 먹는 것도 괜찮겠지요. 입맛도 닮아 가는지 깊은 밤, 가끔 남편은 "우리 간단하게(?)국수 삶아 먹을까?" 한답니다. 그러면 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간단하게, 그럼 당신이 한 번 끓여봐. 어디" 

 

참고로 저는 이 '간단하게' 라는 남자들의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세상에 한국요리 중 간단한 게 어딨습니까?

지지고, 볶고, 데치고, 무치는 온갖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건 그렇고, 지금 저는 뜨끈한 다시국물에 국수 한 가닥 말아서 김치와 먹고 싶습니다.

아니, 어릴 적 그렇게 먹기 싫었던 국시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