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뽑기.
17년 동안 남편은 직장 생활 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주 유유자적한, 그래서 미소가 하회탈을 능가하는 깊은 주름으로
얼굴을 덮은 대단한 미남은 아니지만 느린 성격의 소유자 입니다.
그 남편이 딸아이가 일곱살.
아들이 다섯살 이었을 때 그 일을 지금 저는 이 화면에 옮기는 중 입니다.
직장생활과 비슷한 것을 해 보긴 했었지요.
군 하사 생활 시절.
문산에 살 때의 일 입니다.
군대를 마치고 다시 신학교로 신학교 마치고 다시 대학원으로
그런뒤 일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운운 할 때의 일 입니다.
어느날 부터 두 칸 방에 인형이 하나 둘 쌓여가는 것 이었습니다.
빵공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 오면
남편은 아이들을 돌보며 교회 일 만을 하고 있었었지요.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의 방 구석구석에 인형이란 인형을
대롱대롱 달아 주었었는데.
아침에 일어난 두 아이들_특히나 둘 눈이 왕 방울 만함_의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감격의 감격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마도 남편은 자신이 결혼한 후 한 번도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어째서 후회 한 번 안 했겠습니까?
그 날의 기억이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저는 장담을 해야 만
그나마 남편이 이해가 될 것 같아서....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산타보도도 더 훌륭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그 인형들.
그래서 남편은 그날 이후 아주 괴상한 병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물론 저의 콩나물 살 돈 500원 짜리 동전이 점점 씨를 말려가고 있었구요.
저희가 살던 문산의 그 작은 동네에 몇 차례 들어오는 버스의 종점에는 작은 슈퍼가
하나 있습니다. 그 슈퍼 마지막 샷슈문에는 "띵띵딩..디이딩 띵띵딩...디이딩"이라는
기계음을 일정하게 내면서 작은 인형들을 유리 상자 가득 담고 500 원 짜리 동전만
환영하는 그 500 원 짜리 인형뽑기 기계가 서 있었답니다.
남편은 동전이 생기면, 아니 돈이 주머니에 조금만 생기면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 서라도 꼭 그 기계 앞을 그냥 지나지 않고 인형을 뽑아서 집으로 돌아
오는 것 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 인즉슨...그때의 우리의 생활비 방세 내고 남은 돈 이란 고작해야
5 만원이 전부 였었는데...
그 500 원이 5000 원이 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해서 저는 그 멈추지 않는 그의 병을 두고 치유를 해야 된다는 긴박감을 느끼면서
어느날 협박을 했겠죠.
"당신 말아~ 나 당신이 지금껏 무엇을 해도 말일 의사는 없었는데 말야...
그 인형 말야...당장 멈추지 않으면 이 야구 방망이 보여? 엉? 이 야구 방망이
나 무조건 휘두르겠어...." 남편은 내가 무엇을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임을 익히
아는 터라 한 동안 잠잠 하더군요.
해서 저는 ...
"음~이 야구 방망이가 효염이 있었군."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만의 승리감에 도취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한 것은 그때까지 남편은 절대로 500원 짜리 동전을 넣으면 인형을
낚시질 하는데 정말 한 번도 실패를 한 적이 없이 꼭 하나는 건졌거든요.
대단한 실력이야. 하여간...말없는 남편은 항상 자신의 고집을 들어내지 않고 늘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아주 끈적끈적한 고집의 소유자 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기야
교회와 아이들이 에게는 아주 빵빵하지요.
물론 저의 친정 오빠들에겐 아주 인기가 없는 사람임은 당연하구요.
저에게요?
그야 뭐 남편이니 어쩔 수 있겠어요?
사랑하려 노력하는 수 밖에...사실 결혼 10여년 넘어가면 어디 연애인
기질 가지고 사나요?
방귀도 마음대로 뀌고, 하픔도 쩍쩍 누구 입이 더 큰가 재기라도 하듯이 사는것이 부부인데
뭐 인기가 제겐 별 다르게 있었겠어요?
그냥 살아 주는거지....ㅎㅎㅎㅎ.
그러던 어느날.
야구방망이도.
인형뽑기도.
500 원 짜리 동전도.
나의 기억에서 가물거리고 있을 즈음...
청소를 할 때마다 보지 못했던 인형들이 하나 둘 나타 나는 것 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는 하도 오래된 이야기 같아 눈치를 전혀 못 채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여름날 오후 낮잠을 자고 있는 나의 품 속으로 아들이 기어 들대요.
그 다음은 딸이 기어들고.
다음으로 남편이 교회에 다녀와 옆에 눕더 군요.
"음..모처럼 강아지 처럼 가난해도 좋다...우리 거나하게 낮잠을 가족단위로
어디 한번 자 보자꾸나..." 라고 저는 여유롭게 말하면서
아들의 볼을 쪽쪽 빨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내가 선잠이 들락말락.
아들이 속삭였습니다.
"아빠~엄마 잠이 들었어?"
"쉬이~ 자아..알았지?"
다시 조금 후 나는 무슨 꿍꿍이 속이 있군 싶어 코를 고는 척 했습니다.
"아빠~ 엄마 잠이 드었어?"
"잠깐만..."
남편이 나의 눈 앞에서 손을 훠이훠이 몇번 저어 보는 것 입니다.
"음. 잠이 든것 같아..."
"아빠 내 돼지를 아빠 다 줄께." 아들이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딸 아이도 덩달아서...
"아빠.나도...우리 그럼 나갈까?"
이런 비밀 공작이 있은후 살금살금 이 남편 아이들의 돼지를 털어서
셋이서 나란히 줄을 지어 방을 지나 부엌을 지나 밖으로 나가더군요.
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니....이 ~샹! 멈춘줄 알았던 그 인형뽑기 병이...거기다 아들 딸 까지 합세를?"
연합군 이었습니다.
투자를 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아버지의 인형뽑기 솜씨에 반한 나의 아들과
딸은 남편에게 전 재산을 건 것 이었습니다.
나는 방안 구석 구석을 다시 뒤져서
이상하다고 고개만 갸웃거렸던 그 인형들을 다시 한 곳으로 모으고
구석의 야구 방망이를 문 옆에 세워 두고 기다렸습니다.
뭐 달리 뾰족하고 기발한 생각이 별로 안 나더군요.
아마도 제가 몹시 남편에게 화가 진짜로 났었던 모양입니다.
괜히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17년 그 가난을.
17년 그 시어머니 구박에.
10년 공부에.
어디 잔 소리 군소리 싫은 소리 한번 했던가?
그가 못 벌면, 퉁퉁부은 내 몸 끌고 나가 블럭 공장에서
빵공장에서 보험아줌마가 될때까지 그 자존심 다 버리고 버티는데....
그깐 500원이라 우습게 보는건지...
돈 벌이를 해 본 적이 없어 돈의 가치를 모르는 건지...
하여간 이런저런 남편에 대한 주체 못할정도의 푸념들이 가슴을 꽉꽉 밀고 올라
오는 것을 느끼면서 한참을 훌쩍훌쩍 울다가 아주 기발한 발상이 떠 올라
셋을 기다렸습니다.
자는척 하는 내가 셋의 푸념을 듣자하니 돈을 모두 날린듯 싶대요.
속으로 저는 아주 잘 됐군.
녀석들. 고소하다.
그래도 딸아이는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들어오더군요.
"아빠..괜챦아요...전에 아빠가 뽑아준 인형들이 아직 너무너무 많이 있쟎아요."
" 미안하다!"
그러자 마치 패잔병들 처럼 코를 길게 늘어뜨린 아들을 앞세우고 들어오던 셋은 다시 나란히
제 옆에 눕더군요.
"아빠! 근데...왜 오늘은 인형을 하나도 못 뽑는거지?"
"오늘만이 아니쟎아...어제도...."
"음..글쎄...기계가 나의 속임수를 알아 챘나?"
그런 저런 속닥거림이 오가더니...어느덧 셋다 잠이 들더군요.
저는 일어나 저녘꺼리를 챙기고 빨래를 했습니다.
얼마나 지나자...하나둘 낮 잠에서 깨어 나더군요.
저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자아 청소하고 저녘 먹자...아!"
저는 우리가 낮잠을 주루룩 누워 잤던 그 인형들이 많은 아이들이 방 부터
청소를 하는 척 했습니다.
그러자 낮잠 자던 남편이 일어나 우리 내외가 쓰던 다른 방을 청소하더군요.
아이들은 아버지를 도와 책도 꼿이에 다시 꼿고...미안한 마음에 더욱 열심인척
하더군요.
저는 방을 닦는 척 하면서...
아들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등을 돌린채.
"아들아 아들아! 어? 이 인형 못 보던건데....어디서 났지?"
갑자기 아들이 숨을 깊게 들이 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 아들은 거짓말을 아직 못할 때 였었거든요.
아들이 뭐라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자.
딸아이가 구원 요청도 없이 끼어 드는 거 였어요.
것도 아주 천연덕 스럽게 제게 가까이 다가와서 돌아서서
숨이 넘어갈 듯 바지를 오무리고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네게 말입니다.
그러더니...딸이 나의 얼굴 한번.
아버지의 얼굴 한번.
동생의 얼굴 한번을 아주 빠르게 둘러 보더니
그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아주 굳게 닫다가
다시 열었습니다.
"응~음. 엄마! 이 인형 알지?"
딸아이는 아주 느리게 걸어가 원래 부터 있던 덩치가 좀더 큰 인형 하나를
가지고 오더군요. 그러더니...
"이 인형이 말야....응~ 그러니까...이 인형이 이 인형을 새끼 났어."
얼래얼래 .
애고애고.
거기서 웃으면 절대로 안돼는데...
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실거리며.
"아아~그러니까...이 인형이 이 인형을 낳았단 말이지?"
에고에고 아이들은 천사라더니....
내가 그렇게 답을 하자 아들까지 합세해서
그말이 정답이라고 믿었는지.
"맞아 엄마 나도 봤어."
가난은 잠시라고 하던데...
아직도 저희는 몹시 가난합니다.
물론 그날 나의 야구방망이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인형뽑기 병은 치유가 되었느냐구요?
모르죠...작년에 이혼을 했으니...우리 부부 그렇게 갈라 서서 아주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길이 달라요.
그는 평생 공부나 해야할 현대판 선비님이고..
저는 저 제나라 태공마의 아내는 못되거든요.....
아이들이 자라서.
딸은 벌써 중학교 이학년이 됩니다.
......슬픔을 잊게하는 이야기 모음집...제가 습작 중인 노트에서 발췌했습니다.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