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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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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마에 그 딸.


BY 낸시 2004-01-27

이태리에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간 딸과 메센저를 주고 받으며 둘이서 히히거리고 웃었다.

서로의 만용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웃은 웃음이다.

 

울딸의 간단한 이력은 이렇다.

세 살 때부터 열 세 살까지 미국과 한국을 이 삼 년 간격으로 오가며 살았음.

그 후는 미국에서 주로 살았음.

현재 나이 스므살.

잦은 이사로 인해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고   고등학교 일학년 때 결국 학교를 중퇴함.

검정고시를 거쳐 초급대학에 진학했으나 학업에 대한 열의는 없었음.

18세에 한국에 반 년 정도 머물면서 번역과 영어 가르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함.

뒤늦게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디자인학교를 알아보더니 뉴욕보다 밀라노에 있는 학교가 학비가 싸다고 그리로 가기로 함.

이태리어도 하나 모르면서...

 

딸과 비교해서 엄마인 내 이력을 적어보면 이렇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지만 공부는 죽도록 싫어했음.

전업주부로 산 지 17년이 되었음.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후 직업전선에 나서기 위해 일을 시작함.

샌드위치 만들기 4개월,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 획득에 4개월, ...,세월을 허송하다 커튼가게를 인수함.

커튼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내게 커튼 가게를 판 사람은 내가 커튼에 대해 모른다고 했지만 설마 모르면서 사려고 덤비랴 싶었다고 한다.

지금 전 주인과 함께 고객들을 찾아다니며 주문을 받으러 다닌다.

가면 고객들은 나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들은 이미 전 주인과 잘 알고 있거나 아니면 소개한 사람을 통해 전 주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전 주인과 함께 나타난 나를 단순히 전 주인의 심부름꾼으로 안다.

혹시 나를 디자이너인 줄  잘못 알고 커튼 디자인에 대해 묻는 고객이 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천이 얼마나 필요한지 값이 얼마쯤 될것인지를 물어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모르니까.

하지만 이 상태로 머물 수 없음을 아는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커튼에 대해 공부 한다.

창문 모양에 따른 디자인도 공부하고 디자인에 따라 필요한 천의 양을 계산하는 법도 공부하고 만드는 것도 알아보고 커튼과 함께 사용하는 여러 장식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올해로 오십을 넘은 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씩씩하다.

나를 무시하는 고객을 향해 내 이름을 묻지 않아도  먼저 내 이름을 말하면서 악수하자고 손을 내민다.

공부한 것을 그들에게 살짝살짝 과시하기도 한다.

지나치면 실력이 들통나니까 조금씩만...

힘들 땐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거야 라고 자신을 달랜다.

내가 주인이지만 가게의 모든 일은 가게를 판 후에도 계속 그 가게에서 일하기로 한 전 주인이 결정한다.

경험의 소중함을 인정하지만 때로는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어도 나는 함구한다.

아직은 내가 나서서 좋을일이 없음을 알기에.

그리고 소망한다.

어서 시간이 흘러서 내가 모든 일에 익숙해지기를...

 

메센저를 주고 받으며 딸이 말한다.

자기랑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 여섯 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여러 언어를 말할 줄 아는 유럽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 옆에서 보니 주눅이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 이태리어를 배우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자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단다.

딸은 이태리어도 하나 모르면서 패션 수업도 같이 수강하기로 하였는데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단다.

 

그래서 둘이서 히히거리고 하하거리고 웃었다.

서로 잘해보자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