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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내쫓는 것이 겸손이라면...


BY 낸시 2004-01-26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전 주인의 충고도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불평도 생각하고, 장사라면 무시할 수 없는 금전적인 손익도 따져보고, 내 자신의 그릇 크기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 가게 고객 중에 유별난 사람이 있다.

나야 가게를 인수한 지 며칠되지 않았지만 소문은 이미 수 없이 들었다.

내가 들은 것은 이렇다.

일을 맡기면 일 중간에 수시로 디자인을 바꾸어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봉한 것을 다시 뜯게 만드는 것은 예사이고 일하는 사람이 불평을 하기라도 하면 일하는 주제에 건방지다고 핀잔 또한 서슴치 않는다.

물론 디자인이  바뀌어 일을 더한 부분에 대한 댓가는 지불하지 않는다.

일을 끝내면 트집을 잡아 값을 깎기 일쑤고 어느 때는 말도 없이 끝난 일감을 가져가고 돈을 안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 일하고 남은 원단을 슬그머니 가져가기도 하고 원단 값을 달라고 하면 결코 주는 법이 없다.

가게에 다른 손님이 있으면 더 큰소리로 불평을 하고 싸우려고 덤벼서 다른 손님보기 민망하게 한다.

 

가게를 인수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녀와 충돌이 생겼다.

문제의 발단은 유러피안  필로라고 부르는 베게 종류의 사이즈 때문이다.

그 전날 그녀는 전화로 화를 불같이 내었다.

킹 사이즈를 해달라고 했는데 퀸 사이즈를 만들어 주어서 안에 들어가야 할 속이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화를 받는 나는 천을 사다라도 다시 해드리겠다고 하였다.

그 날 오후 베게 속을 들고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가 들고 온 베게 속은 특별히 단단하게 하기 위해 속을 많이 넣은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베게 사이즈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녀가 들고 온 베게 속이 보통 것과 다른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다시 고쳐주기로 하고 그녀는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또 나타났다.

마침 가게에는 다른 고객이 있었다.

고의인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였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또 다시 커다란 목소리로 불평을 시작했다.

다른 고객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불평하는 그녀에게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맘에 안들면 실수 안하는 다른 가게를 찾아보셔야지요."라고.

이것이 바로 그녀가 노리던  반응인 줄도 모르고 경험이 없는 내가 실수한 것이다.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녀는 자기가 맡긴 일감들을 달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전 주인에 의하면 이것이 그녀의 수법이라고 한다.

거의 끝난 일감을 이런 식으로 가져가고 돈을 주지 않는 것이...

전 주인이 나서서 간신히 그녀를 달래보내고 나는 그만 민망해지고 말았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녀를 고객 명단에서 제외를 해야 하는지 하는 것이다.

전 주인은 그래도 그녀에게 배울 것이 있으니 내가 프로근성이 있다면 그녀를 쫓아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녀에게서 배울 점이란 재봉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들고 나타나 도전이 되어 우리 일하는 실력이 늘고,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이 또한 배울 점이라고 하였다.

다른 일하는 사람들은 제발 그녀 꼴을 안보면 좋겠다고 한다.

그녀가 와서 몇시간씩 가게를 휘젓고 가면 화가 나서 일감이 손에 안 잡히고 자꾸 실수가 생긴다고 하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나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번 일을 끝내고 나면 그녀의 일감을 맡지 않기로...

나는 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기를 바란다.

내게는 고객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잘못했다고 기분나쁠 정도의 무시를 당하는 것을 막아 줄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금전적인 손익이라면 그녀의 일을 맡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녀의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전 주인의 말에 의하면 다른 사람일을 하는 것보다 세 배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까다롭기도 하고 중간에 디자인이 바뀌기도 하기때문에.

우리 가게는 손님이 많아서 주문량을 제 때 소화 못하는 실정이다.

금전적인 손익이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임을 나는 잊지 않는다.

장사는 돈을 벌기위해 하는 것이니까...

장사를 통해 돈도 벌고 내 인격도 닦아나간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그녀가 주는 도전에 나는 굴복하기로 한다.

내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될 기회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 그릇의 크기로 봐서 나는 그 전 주인처럼 그녀를 잘 구스를 자신이 없다.

하긴 그 전 주인이 그녀를 살살 달래기만 하니까 한번은 보다못해 일하는 사람이 나서서 다시는 가게에 나타나지 말라고 그녀에게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고한다.

가게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고객 명단에서 사람을 뺀다고 결정하는 일은 누가 봐도 현명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른다.

내 그릇의 크기에 맞는 장사를 하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