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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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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있는 내고향.


BY 도영 2003-12-27

어머니의 6주년 기일이라 친정인 강원도 원주를 다녀 왔다.며칠전에..
세월이 좋아 쭉쭉 뻗은 중앙고속 도로 덕택에
포항에서 원주까지는 넉넉잡아 4시간이면 충분했다.
수년전까지만해도 내가 사는 흥해읍에서 깊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강구를 지나 영덕을 거쳐 안동 을 통과해 예천 영주 풍기를 지나.
구불구불 고등어 창자속같은 소백산맥을 넘어야 단양이 보이고.
제천이 보였는데 두어시간 단축된 친정 가는길은 과거에 비하면 참말로 가까운 거리였다.

나의 유년시절과 소녀시절이 그리고 짧은 처녀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내고향 원주.
강산이 두번 바뀌고 두해가 더 지났건만 언제나 친정땅을 밟는 마음은
새댁시절이나 사십대 중반인 이나이에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월이 흐르고 내가 나이가 먹어갈수록 고향은
안개속처럼 희미하게 혹은 아련하게 흰 베일에 싸인 추억들이
내마음의 틈을 찾아 새록새록 연기 스미듯 스며들어와

내 눈시울을 붉그레하게 만들어 놓는다.

제천쯤만 와도 웬지 마음이 푸근하니 공기조차 낮설지가 않고
차창밖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봄직한 착각마져 일으킨다.
똥개도 지그집 앞에서는 오십점은 따고 들어간다고
나역시도 충청도와 강원도 경계선 팻말이 보이면 차창문을 열고
""아...내고향 원주여..흠..예전 그 내음이야..그렇치 바로바로 이느낌이야 흠.."
공기를 깊숙히 들여마시며 거들먹거려도 보는데 내고향 원주는 내게 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짝사랑의 대상이였다

친정 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아침일찍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큰길을 놔두고 골목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니 남편과 두 아들들이  이해 못하는 표정들이다.
나는 초등시절에 살았던 아버지가 이사하면서 심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빨간기와집을 찾아 차를 몰았다.

대문앞 소나무는 온데간데 없는 빨간 기외집앞에 차를 세우고 반쯤 열린 대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들여다본 어릴적 그집은 많이도 변해있었다.
당시 별루 넓지 않은 마루가 있었고 그아래 도끼다시 봉당이 있었는데
그 봉당은 없어지고 그자리에 밤색 미닫이 샷시문이 있었으니..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 안방이며 부엌이며

내 동생들과 같이보낸 공부방을 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나는 대문 틈으로 추억을 거슬러  더듬어 보았다.

저기 저 마루에서 삼십대 중반쯤의 어머니는는 뜨게질을 하였는데...
추운 한겨울 마루문이 없던 저 마루를 걸레를 꾹짜서 딱으며 하얗게 얼어붙었는데...
저기 저 봉당에서는 봄볕이 잘게 부서지는 어느 따사로운 봄날에 공기놀이하던
나와 바로 세살 아래 남동생의 환영이 튀어나오는듯했다.
뒤에서 크랙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오십이 머지않은 남편과
내가 결혼을 해서 친정을 떠났던 그나이가 되어버린 아들들이
어여 가자며 재촉을 한다.
세월을 거꾸로 돌려 잠시나마 마루에서 뜨게질 하시던 어머니를 보았고
봉당위에 공기놀이 하면서 남매의 까르르 웃음소리도 들었고
마당을 지나 대문 옆 화장실 위에 장독대가 있었는데.
그 세면 계단을 밟고 올라가 동네를 바라보며 오렌지색 색소를 타서 폼잡고 마신 달달한 뉴슈가탄 유리컵을 든 동생들을 보았다.
다시 차를 몰아 가을이면 코스모스 만발한 제방뚝길을 올라가니.
나의 첫 사랑을 만났던 추억의 개봉교 다리가 철거중이였다.


"개봉교 다리""
내 첫사랑을 만났던 그장소.
80년대 초쯤이라 기억된다.
단발머리 나폴나폴대며 개봉교 다리를 건너가던 스무살 싱그러운 소녀는
그 다리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강렬한 8월에 여름햇살이 개봉교 다리는 달을대로 달아올라.
반대편 다리 바닥은 그 열기가  마치 봄날 아지랭이 올라오는듯 아른거렸다.
그 아지랭이 같은 열기속에 나의 첫사랑이 된 그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으니.
그는 사관생도복을입고 내 곁을 스쳐지나 갔고 꼭 일년후,,그러니까 스물한살에
그다리위에서 우연히 재회를 했고 ...잠시 아름다운 사랑을 했는데.
그런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는 개봉교 다리가

 뻘건 락카로 갈겨쓴 커다란 통행금지란 글자만이
군데군데 씌어져 있었다.
가슴한켠이 서늘하니 이제는 볼수없는 다음에 오면 없어질 다리를
열심히 눈에 담으며 옛추억을 회상했다.
권색 미니주름치마에 풋풋한 단발머리 소녀와 사관생도의 첫사랑의 기억들을 주워담았다.
주섬주섬...22년전 ...그시절 ..그때의 사연들을 반파된 다리위에서 끄집어 내어 알록달록 헝겁주머니에 담아 똑딱단추를 잠가 비밀의방에 은밀이 넣어버렸다.
철거되는 흉물스런 추억의 다리를 비껴서 돌아돌아 원주 톨케이트를 빠져 나오니.
내고향 원주의 도심은 겨울 아침 안개 속에 에어싸여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
친정을 방문하고 떠나올때마다 늘 그랫던것처럼..
고향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리고 고향의 단공기를 폐부속 깊이 들이마셨다.
아들에게 운전대를 내주고 조수석 의자 깊숙이 몸을 맡기고 경상도 땅에 도착하는
시간을 손으로 계산을 하며 그렇게 내고향 원주를 두고 왔으니...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