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겨울눈)
오늘은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된서리가 잔디에까지 하얗게 내려앉았고,
음지쪽 스러진 덤불 위에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하얀 서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특별한 의식을 치르듯
마당으로 나서는 일이 저는 즐겁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찬바람이
후 불어와 정신이 맑아집니다. 엊그제부터 목이 칼칼하고 감기기가 있어서
정신도 흐리멍텅한 느낌이었는데, 밖의 맑은 공기를 쏘이니 한결 기분이
나아집니다.
오늘은 유난히 새들 소리가 허공을 꽉 메우고 있습니다. 딱따구리는 예의
따따딱 빠른 템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아닌, 느리게 '턱~어 따~ㄱ'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고, 이름을 모르는 작은 새들은 추운 겨울을 지낼 든든한 덤불숲
으로 이사를 하고있어서인가 몹시 분주한 소리와 날개 짓을 하며 덤불 주의를
맴돌고 있습니다. 아마 새들도 마지막 겨울 준비를 하나 봅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볼까하고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서니, 망보고 있던 새가 "찌~익 찌~익"
소리로 자신의 동료들에게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을 꽉 메우던 새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한 정막이 찾아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치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제 동료에게 보낸 신호를 필두로 다시 새들 소리가
분주히 들립니다.
알게 모르게 자연은 엄동설한을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요.
오래 전부터 목련은 잎을 모두 떨구어내고, 겨울눈으로 찬바람을 맞고있습니다.
보통 나무들의 겨울눈은 아주 작아 있는 듯 없는 듯한데, 목련은 꽃이 크고
잎이 커서 인지 겨울눈도 눈에 띄게 큽니다. 우리 집 개들 레시와 레몬은
요즘 유난히 살이 쪄보입니다. 사실은 살이 찐 것이 아니라, 털이 북실북실
아주 많이 자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추운 날씨에 견딜만한 모피를
알아서 장만한 셈입니다. 겨울 준비를 끝낸 자연을 보면 여유스러움이
느껴집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목련 겨울눈과 해가 비추는 따뜻한 양지에,
뜨뜻한 모피를 입고서 누워있는 레몬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장만한 길죽 길죽한 땔감을 보면 또한 그렇습니다.
(겨울초-봄에 노란 유채꽃이 핍니다.)
그런데, 겨울초를 보면 마음이 야릇해집니다.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연이
어떤 방식이든 추위를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만, 우리가 유채꽃이라고
부르는 이 겨울초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을에 씨를 뿌려 푸른 싹이 돋아나더니,
지금은 쌈을 싸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 화단 한 곳을 마치 봄이란 착각이
일 정도로 초록빛으로 덮고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 겨울초를 뜯어다 쌈도 싸먹고
샐러드도 해먹고 있는데, 먹을 때마다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그 추운 겨울을
어찌 견디며 이리 푸를 수 있는지..... 오늘 아침에는 이 겨울초에도 된서리가 앉았다,
살얼음이 되어 있네요. 그래도 결코 초록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신선한 야채를
온실이 아닌, 이 추위 속 그냥 밖에서도 마련할 수 있다는데 저는 감탄합니다.
겨울에 태어나 겨울에 살아가니, 사실 겨울 준비를 할 필요가 없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 겨울초를 보면 흐릿한 정신이 다시 푸르러지며 내년 봄에 필 유채꽃 볼 희망을
새록새록 다집니다.
(살얼음이 내려앉은 겨울초잎)
산을 타고 내려오며 윙윙대는 겨울 바람이,
휘휘 흔들리는 갈대들이
겨울 날 채비들은 다 한 건지,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온 자연을 향해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