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52

흐르는 강물처럼


BY baada 2003-12-02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후다닥 몰아치고 나는 집을 나섭니다. 딱히 그리 바쁜것도 아니면서 내가 서둘러 집을 나서는 이유는 혼자만의 자유를 그리워한 까닭입니다.

 시댁에서 살림을 시작한 지가 아니 살림을 접은지가 이제넉달째입니다. 밥하고 찌개 끓이고 윤나게 방을 닦았습니다. 농축세제에 옥시크린까지 넣어 폭폭 빨래를 삶아 부신 하늘을 쳐다보며 기분좋게 빨래를 널던 일이 엊그제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빨래를 삶지 않습니다. 부시도록 하얗던 아이들의 속옷이랑 수건이며 행주등이 이제 제 색을 잃어 누렇게 변색되었습니다. 어쩌면 변색되어 버린것이 백프로 면만일까요.  아이들도 나도 화들짝 소리나게 웃어본적이 참 오래 된듯합니다. 뽀송뽀송한 감촉이 전해주던 그 상쾌함과 눈부신 깨끗함이 지금 난 그립습니다. 아이들은 그립다는 말 못하고 속으로만 삭혀내고 있을텐데 감히 난 그립다는 말을 뱉어냅니다.

 시댁에서의 삶은 단지 살이입니다. 동물이 목숨을 견뎌내듯이 단지 살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속에서 나를 살게 하는 힘은 아이들입니다. 내 아이들이 지켜내는 든든한 미소입니다. 갑작스런 변화에도 투덜대지 않고 오히려 엄마를 근심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참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생각도 해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 해가 다 가고 있습니다. 문을 열고 새로운 시간속으로 행진하던 무리들 틈에서 나는 얼만큼 멀어져 있는 걸까요. 문이 닫히기 전에 나는 여기서 벗어나야 하겠지요. 기차는 기다려주지 않고 역사를 빠져 나갈겁니다. 그리고 다시 기차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리고 그리고 다시 그 만큼의 생을 싣고 서서히 터널을 지나 갈겁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허상을 생각합니다. 나로 인하여 그들은 실체가 될 수 있으나 또 나로 하여 그들은 영원한 허상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결국 허상일뿐입니다. 나무들이 튼튼히 자라기위하여 그만큼의 틈을 안고 살아가듯이 우리들 역시 그대와 나 사이에 나있는 비움의 공간을 인정해야 합니다.더 다가설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공간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그것은 그리움이면서 미움이면서 그러나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목숨같은 슬픔이기도 합니다.

 시댁에서의 삶은 많은 말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나는 참 많은 말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지금은 침묵할 때 입니다. 그리고 나는 가만 강물처럼 흘러갈 뿐입니다. 강가에서는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도도한 흐름만 느낄따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물처럼 흘러 나는 결국 누구나처럼 바다로 흘러들겠지요. 바다에서는 누구나 다 외로울것이고 누구나 다 그리울것이고 누구나 다 넉넉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