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잎들이 다 졌다. 노랗고 발갛게 달아올랐던 대지가 제 풀에 한껏 취해있더니 그새 깡마른 줄기만 드러낸채 겨울달처럼 서 있다.
가야 할 사람은 이미 다 떠나갔는지 간이역에는 잎다진 헐거운 바람만 남아서 빙빙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눈안에 오래 두고 보고싶던 샛노란 황국의 깊은 향기도 팔락팔락 종일 그렇게 헤진 옷자락처럼 마지막까지 남아서 버티던 가로수 은행잎 노란 손짓도 그렇게 속내를 다 드러내지도 못하고 떠나가 버렸다.
하얀 서리가 내렸구나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낟알 그대 안에 박힌 미완의 그리움같은 낟알 채 추수하지 못한 가을 저녁을 지나서 하얀 서리가 내렸구나.
그러나 아직 떠나기엔 왠지 아쉬워 푸르른 흐느낌같은 잔풀 마른 대지에 몸을 낮추고 앉아있다. 그대 가슴에 아직 생기가 남아있는지 난 물을수 없어 그저 흘깃흘깃 먼 눈길만 던지고 있었다.
강물은 그래도 자꾸만 꾸역꾸역 흘렀다. 둑 가생이를 언뜻언뜻 적시며 흘러내려 그래도 차마 다 못 껴안고 돌아서려는 듯 돌아서려는 듯 그래도 내내 흘러갔다. 그대의 눈속에 든 강물같은 오랜 얘기를 읽고 싶어서 찰박이는 물샅에 나는 발을 담구었다.
차마견딜 수 없어 그 그리움 어쩔수 없어 호수가 되어버린 강. 그리움 덩이 다 안고가지 못하여 호수가 되어 멎어있는것일까. 호수에 가면 강물이 되어 흘러가지 못한 그대의 얼굴이 안스럽다.
겨울들에 서 있는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안으로 안으로 잠재운 그 생의 깊이 만큼 겨울들에 서있는 나무는 말이 없다. 그래서 나무 아래 서면 나는 더 시리고 외로워져 눈물이 난다. 견뎌내지 못한 시간들이 가시처럼 박혀 나는 슬펐다. 꽃같은 목숨들이 저마다 땅으로 내려 생을 살찌울때 훌훌 모두 벗어 그의 가슴에 한낱 몸짓으로 드러누울때 나는 생가지처럼 몸을 태웠다. 욕망의 허물을 벗지 못하여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면서도 쿨룩쿨룩대면서도 불길에 몸을 얹었다.
잉태의 시간이다. 만삭의 몸. 대지의 깊고 은밀한 샅으로 신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그대는 듣고 있는지.
물은 길을 찾아 용케도 흘러간다. 제방을 두둑히 쌓아 막아내도 봇물처럼 흘러내려 도도히 옛길을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