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쏟아지던 비가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얇은 어둠이 온 집안을 엄습했습니다. 어둠때문인지 적막하기까지한 집안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에 잠투정을 좀 심하게 하던 작은 아이가 평온을 작은 입술에 머금으며 살포시 미소띤 얼굴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마치 휴가라도 받은 양 한가해진 틈을 타서 아이옆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자려고 애를 쓰려니 자꾸만 잡념들이 머리속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오히려 머리만 아파왔습니다.
습관처럼 TV리모콘을 작동시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홈쇼핑 채널에서 명품 지갑과 핸드백이 소개되는 것을 보고 채널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색이 바랠때로 바래서 본래의 색을 찾아 보기 힘들정도인 지갑이 청승맞게도 TV위에 놓여져 있는 꼴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이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끊어진 고리부분을 실로 동여 맨 모습이 어쩐지 내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우울하기 까지 했습니다.
평소에도 명품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늘은 유난히 여자의 본능이 나의 모든 이성을 잠재우고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꿈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넉넉치 못한 살림에 명품은 그림의 떡 정도로 치부해 버려야 하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엄마 앞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큰 아이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조용한 성격이라 혼자서도 별 탈 없이 곧잘 놀곤 하지만 엄마마음에,,, 한동안 보이지 않는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늘어질 때로 늘어진 어깨를 추스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힘차게 방문을 열고 들어 오는 큰 아이의 모습은 수줍은 미소를 애써 감추듯 고개를 돌리고는 무언가 불쑥 엄마 앞에 내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게,,,뭔데..??"
"음,,, 명품지갑이에요..."
"명품...???"
"네,,, 엄마가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만든게 명품이라고 했잖아요. 나도 커서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될꺼니까... 이건 바로 윤성이표 명품지갑이에요."
"이걸 니가 만들었어..???"
"네,,, 엄마한테 선물하려고 윤성이가 만든 지갑이에요..."
"어때요...멋지죠..."
"그래,,그래,,,"
너무나 사랑스런 딸아이의 말에 울컥 쏟아지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까지 글썽거리게 했습니다.
한동안 안 보여서 불안해 하던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딸아이는 엄마가 명품지갑을 소개하는 TV를 보고 있으니까 그 작은 가슴으로 느끼기에 엄마의 낡은 지갑이 내심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그래서 예쁜 종이를 접고 또 접고... 작은 손은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고마워,,,윤성아,,,정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명품지갑인걸..."
나는 어린 딸아이를 두팔로 감싸 안으며 행복의 흐뭇함에 빠져들었습니다.
네살배기 어린딸아이가 손이 발갛게 부어 오르는 지도 모르고 그저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어준 종이지갑...오늘 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명품지갑을 선물 받았습니다.
엄마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에 수줍던 미소는 사라지고 활짝 함박웃음을 지으며 의기양양 방문을 나서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잠시 나의 행복한 가정생활의 참행복을 망각한 채 애처롭게 한탄섞인 한숨을 내 뱉는 모습을 딸아이에게 보였던 것이 엄마로서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명품이란 참뜻을 어린 딸아이 만큼도 이해 못하는 못난 엄마는 오늘도 네살배기 어린 딸아이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답니다.
명품이란 진열장에 놓인 값비싼 제품들이 아니라 작은 정성과 사랑이지만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우리 주위 가까운 곳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처럼 엄마에게 참된 행복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우리 딸...
그런 딸이 있어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