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내가 겁 없는 여자인 줄 안다.
매사에 너무 똑부러진 성격이라서 남편을 얼마나 피곤하게할까
지레 짐작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고시절 교련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그러셨다.
'누가 널 데려갈런지 모르지만 고생 좀 할 게다...'
덧붙여 웬만한 남자는 성에 차질 않아 아마 쉽게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까지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좀 대가 센 여자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말 하기 전에 삼초간만 여유를 갖고 심호흡을 한 뒤에
내 의견을 얘길하리라고 내심 다짐을 하고 또 했었다.
타고 난 성깔이 어딜 가랴.
대학에서도 '교수 학생 간담회' 사회를 맡은 자리에서
여지없이 날 향한 비수같은 독설이 튀어 나왔다.
남학생들을 너무 우습게 알고 깔아 뭉개려한다는 어느 동기의 말 끝에
난 서슴없이 말했다.
그 남학생이 오죽 못 났으면 여학생이 그리 대했겠느냐...
간담회가 끝 나고 개인적인 항의를 받아야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 나를 자기 여자로 기어코 만들고야 말겠다고 쫓아다닌 이가 바로 지금 내 남편이다.
앙칼지게 쏘아 붙이는 내게 '너도 여자냐'고 악을 쓰며
날 길들여보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남자였다.
아침에 눈 뜨면 집 앞을 지키고 있는 그가 지겨워 나도 그에 질세라
소리소리 지르며 책을 집어 던지고 대판 싸우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교정에서 싸우다 기획처장실에 함께 불려 가기도 했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에 남편은 자기 집에도 안 들어 가고
우리집 근처 빈 터 같은 데서 날밤을 새우곤 했다.
자신은 일생 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싶다며 끈질기게도 쫓아다녔다.
나 좀 놓아달라고 애원해 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미친 여자처럼 펄쩍펄쩍 뛰기도 하여 구경꾼들이 모여들게 만들고
서로가 무슨 전생의 원수처럼 마주치기만하면 싸워야 했다.
그렇게 3년을 허비했나 보다.
남편은 나만 쫓아다니느라 2년을 전과목 'F학점'-당시엔 쌍권총이라 했다-을 불사하면서도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얻은 여자인만큼 남편은 정말 철저하게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자이다.
이기적이고 때로는 무모한 고집쟁이인 나를 달래고 비위를 맟춰가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아끼지않았다.
애교도 부릴 줄 모르고 사근사근한 맛이라곤 전혀 없는 나무토막 같은 여자.
남편에 대한 나의 모양새를 표현하자면 딱 그런 표현이 맞을게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인 체'하는 습성 한 가지는 있다.
나는 팔힘이 넘쳐나도 절대 벽에 못 박는 짓은 하지 않는다.
전기를 잘 만질 줄 알지만 절대 전구를 갈아끼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밥상이나 무거운 것은 내가 들면 큰 일이라도 나는 듯 절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장 보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면
모든 짐은 남편 차지이다.
나는 핸드백만 흔들며 뒤 따라 가면 된다.
내 몸이 조금만 피곤하면 일어나지도 못 할 것처럼 엄살을 부린다.
이젠 그에 더하여 아예 여우가 되기로 했다.
난 당신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난 당신 없인 아무런 재미가 없어...
내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우리 남들이 부러워 죽을 만큼 닭살커플로 이쁘게 살자...
발바닥에 마치 제트기를 단 듯
날 위해 바쁘게 주방으로 달려가는 그의 등뒤에서 난 소리없이 웃는다.
이젠 나도 '여자'가 되어 가는가 보다...
'여우'가 이렇게 편한 것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