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점점 깊어갑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은 길고
한해의 끝자락에서 회환에 눌려 잠은 안오고...
까무룩히 사위어가는 어둠안속에서
더듬거리는 희미한 발자욱을 따라 유년의 소롯길로 떠나봅니다.
어릴적 내가살던 철도관사 다다미방은 무지하게도 추웠답니다.
뜨거운 물을 넣어 수건에 싸서 오빠들이 애인처럼 품고 자던 수통모양의 유담뿌..
유담뿌를 사용할 무렵에는 연탄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집집마다 나무나 짚단으로 난방과 조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마땅히 논농사가 없던 우리는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나무시장에 나가서 나무를 사다 땔감과 조리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육이오 이전에 서울 순화동에 살때에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허위허위 걸어서 무악재 아래 있는 영천이라는 동네에가서
나무를 사들였다는 소리를 어른들께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연탄이 나온것은 그당시 여성을 일손을 덜어주는 큰 혁명이 였을겁니다.
아...
생각만해도 끔찍했던 연탄가스 중독의 공포...
자고나면 연탄가스로 하룻밤에도 몇십명씩 죽었다는 뉴우스를 접하는게 아침인사였고
그시절 집들은 외풍은 왜그리 세고
사는건 죽지 못한 정도로 피폐했는지
자고나면 누구네 김칫독이 통째로 없어졌느니,
고추장단지를 도둑 맞았느니 하면서 아침에 황당해 하는 살풍경한 분위기...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주던
미국의 잉여 농산물 우유가루, 옥수수가루, 구호물자 의류..
서울에선 꿀꿀이 죽으로 한끼를 연명하던 도시빈민층...
참으로 넘기 힘든 보릿고개를 휘청휘청 거리며
잘도 넘기고 버텨온 세대입니다.
넉넉히 먹고 입진 못했었지만
그래도 그시절이 그리운 건
사람과 사람사이에만 느낄수 있는 사람의 온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을 에일듯한 추위에 발을 동동구르며 뛰어가던 등교길
덤벙거리다 엎어지기라고 하면
손바닥에서 몇만볼트의 강한 전류가 흐르고 오금이 얼어 붙은듯한 그 아픔!
눈물마져 나오지 못했지요.
너무 추워서...
절대 빈곤...
절대 추위...
살비듬처럼 허옇게 일어나던 숱한 절망감들...
방안에서도 허연 입김이 나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방안에 둔 걸레가 동태처럼 빳빳이 얼어 붙었던
그 옛날의 내집이 그립습니다.
가만히 눈감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듯 합니다.
이렇게 편한 세상을 감히 상상이나 했었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미워하지 말고 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