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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Y 빨강머리앤 2003-11-08

소설'냉정과 열정사이'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일본영화....

소설을 누가 썼던가. 에쿠니 가오리 그리고... 남자 이름이 어렴풋하다.

그래서 영화를 검색하는데 '냉정과 열정사이'의 냉랭한 기운을 감지했는가....

이다지도 영화평이 없다니... 그래, 소설책을 먼저 봤어야 했는지 모르지.

아니, 소설책을 보고 이 영활 봤다면 더욱 실망스러워 아마 영화를 끝까지

볼수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 신문 한켠을 차지하며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 가 오랫동안 광고가

될때, 무척이나 섬세한 사랑이야기 일거라는 짐작을 했었다. 십년간의

사랑, 만나고 엇갈리고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십년동안의 사랑을

나도 들여다 보고 싶었던 차 영화가 나왔노라 해서 얼마나 반갑던지....

 

영화가 엔야의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열렸다. '케러비언 블루'

그녀의 몽롱한듯, 감미롭게 감겨드는 음악이 이탈리아 거리를 물결치면

교회당이 보이고 오래된 석조건물 사이로 준세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이 영화는 남자주인공 '준세이'의 시선을 따라 가며 전개가 된다.준세이와 아오이는

열아홉 어느 날에 우연인듯 마주친다. 허름한 음반가게에서 아버지의 나라

일본으로 유학온 아오이는 음반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며 화를 내고 휑하니

나가버린다. 그걸 보면서 준세이는 아오이의 기억이 또렷이 가슴팍에 박히는 경험을

하고 그녀가 놓고간 동전을 돌려주러 그녀가 일하는 미술관에 들린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둘은 자주 부딪힌다. 아오이가 준세이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열정을 안으로 숨기고 냉정하게 사는 여자, 아오이..

그녀를 사랑한 준세이... 둘은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

밖으로 드러난 냉정함이 오히려 준세이를 그녀에게 다가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냉정함이 아오이를 지켜주는 자존심이었다는걸 알고서 말이다.

그때가 둘의 열아홉이었다... 열아홉... 얼마나 풋풋한가.

풋풋한 둘은 어느 봄날 늘 만나곤 하던 측백나무 사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첼로를 연습하는 학생의 연습장면을 본다.

늘 틀리는 곳에서 다시 틀리기를 반복하는 그 첼로연습을 그들은

재밌어 하면서 듣던 차였다. 그런데 그날은 틀린 구석없이 유려한 첼로음악이

완성되고 둘은 감동으로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서 나누던 떨리던 첫키스.

둘은 약속을 한다.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우리 십년후에

그곳에서 만나자'고

세월은 흐르는법. 사람의 마음도 세월따라 흐르기 마련이지만

준세이는 아오이를 향한 오롯한 마음을 간직하며 피렌체로 유학을 간다.

화가였던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던지, 문학을 전공한 준세이는

피렌체의 유화복원 스튜디오에 취직해 복원기술을 전수받는다.

유화복원을 가르치던 조반나 교수는 준세이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가장 어렵다는

'치골리'의 그림을 복원하라는 숙제를 준다.

거의 완벽하게 치골리의 그림을 복원해 냈지만 준세이의 그 복원 그림이

찢기는 사고가 난다. 스튜디오는 폐쇄가 되고, 다시 우연처럼 만난

아오이는 밀라노에서 사업가와 동거 중이다. 마빈과의 사랑을 강조하는 아오이를

두고 준세이는 실망하여 일본으로 돌아온다.

 

준세이 곁엔 메미라는 여자가 있다. 그의 마음속엔 항상 아오이에 대한

사랑이 아픔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그는 메미를 받아 들일수 없는데

메미는 준세이의 사랑을 갈구하고 ... 아오이의 곁엔 마빈이 있으나,

마빈은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엔 항상 준세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그것이 사랑이기라도 한건지...

준세이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으리란걸 알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메미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아오이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온전한 마음을 갖지 못해 괴로운 마빈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현실에 있어서는 마빈이 아오이 곁에 있고,

메미가 준세이 곁에 있는데 현실에 없는 먼 이상과 같은 사랑은 언제나 가슴속에서

열정을 불러 오는 것이다.

 

피렌체로 부터의 조반나 선생 자살소식을 접한 준세이는 메미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하고 다시 피렌체로 떠난다.

치골리의 그림을 찢은건 조반나 선생이었고, 그녀는 준세이의 그 탁월한 능력을

질투했었노라, 그리고 어쩌면 준세이를 사랑했었을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이야길

듣는 준세이는 담담하다. 이제부터 다시 피렌체에서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아오이를 냉정하게 기다리며.

 

아오이는 마빈으로 부터 함께 미국으로 가자는 권유를 받고 그를

따라 간다. 아오이의 마음을 모르겠다. 어쩌면 마빈이 그녀의 외로움을 치료해주는

방편을 더 잘알고 있었으니 그녀는 마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지..

준세이는 스튜디오를 다시 차리고 유화복원에 다시 몰두한다.

 

서른,  준세이와 아오이가 약속한 그날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스카이라운지에 뭇 연인들이 몰려온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그 전설같은 믿음에 충만한 연인들은

두오모 스카이 라운지에 몰려들어 달콤한 입맞춤을 나눈다.

그들은 그곳이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연인들의 성지'임을 믿는 다는 듯이.

표정엔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준세이의 얼굴에 조금은 초조한 빛이

어린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을건지... 십년전의 그 약속이 조금은 허망하다 할지라도

그냥 아오이의 얼굴 한번 봤으면 싶다. 그녀의 진정을 들었으면 싶었던 준세이 앞에

아오이는 나타날건가... 성당의 종소리가 그렁그렁, 저녁노을을 뚫고

울려오는 시각... 준세이는 뒤에 서있는 아오이를 마주한다.

둘은 광장을 가로 질러 공원에 서있다. 현악4중주단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첼로독주가 이어진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그건 십년전, 대학캠퍼스에서

첫키스를 하게 한 바로 그 음악이었다. 바로 그학생 이었던 첼리스트, 같은 반지를

끼고 있다. 아, 이건 필연이구나. 준세이는 아오이의 손을 잡는다. 그날처럼.

둘은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이제 사랑할 일만 남았구나. 영화가 끝나겠지 싶었는데

감독은 그런 관객에게 한방 먹이겠단 심보였는지 아침, 차를 준비하는

준세이와 옷을 입고 있는 아오이 사이에 냉랭하게 흐르는 기류를 잡아낸다.

 

지극히 현실적인 아오이... 우리가 과연 행복할수 있을까를 물으며

돌아서는 아오이의 눈에 흐르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온전한 사랑을 요구하는 마빈에게 '준세이는 나의 전부'라고 얘기한

그 눈물의 의미가 설명되어 지지 않는다.

 

혼자서 독백처럼 내뱉는 준세이의 말이 주는 여운이

자못 길었다. '자신이 있을 곳은 누군가의 가슴속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가슴아픈 첫사랑의 기억은

그저 가슴속에 묻어 두어야 하는지...

 

책을 읽어 봐야 겠단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해준 영화'냉정과 열정사이'는

준세이의 회고를 바탕으로 엮어나가는 아오이와의 만나고 헤어지고 엇갈리는

사랑의 행로를 그렸다. 그 틈과 틈사이가 다소 매끄럽지 못해 비끄덕 거렸던건

이 영화의 커다란 흠집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진혜림이 다소 평범하게 연기를

한 반면 준세이 역의 일본배우는 잔잔하고 섬세한 그림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한

명연기를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피렌체의 명소들이 곳곳에서 보여지며 그 위로 엔야의 음악이

조화롭게 버무려져 아름다운 한편의 영상을 간직하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번 볼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