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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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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의 추억


BY 언저리 2003-11-09

"엄마 오늘도 실패했어..." 대학 생인 막내 녀석이 
아침에 화장실에서 나오며 한 숨 섞인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오늘도 변기와 씨름하더니 속시원한 해결을 못 봤나 부다
불과 1년 전 여기에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는 
재래식 즉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며 아주 속시원?하게 살았었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옛 구석말)집집마다 화장실(일명 변소)은 
마당 끝이나 뒤 안에 있었는데 우리 집 만 특히 20미터쯤 내려간 길옆 
샛강 둑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따라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이 가장 고역이었다
물론 우리 집 옆집 상희네도 어둑어둑한 밤에 변소에 갈려면 
서로 무섭다고 바래달라고 싸움 싸움하며 식구 모두 아우성치며
우루루 몰려서 다니는게 동네의 일상 풍경이 되어 버렸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의 현상들이었다
따라서 변소를 갈려면 서로 상부상조하기로 자연스런 협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특히 우리집은 아이들이 셋이었고 어렸을 때보다 커가면서 더 겁이 많아졌다
따라서 한놈이 마려우면 어느시간과 어떤일을  막론하고 일단 중단하고 
변소로 우루루 몰려간다 이건 일종의 의리이며 상도의 같은 종류이기도 했다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변소 얘기만 나와도 우리집 강아지 밤비마저 먼저 나서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변소에 가면 한놈은 용변을 보면서 일단 문을 반쯤 열어놓고 
우리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의별 얘기를 다한다
막내는 강아지와 놀고 세 모녀는 유머시리즈며 학교에서 들은 야한 얘기도 서스럼없이 
오히려 이 엄마에게 해준다 그러면 그 즉석에서 성교육 강좌도 해주며 
여름에는 모기에 물리고 한겨울엔 다리와 엉덩이가 얼었고 
그래도 입김을 호호히 날리면서 깔깔대며 온갖 얘기하다보면 
그 숙성된 고향의 향기도 정겹게 한몫을 했다
그리고 우리동네는 모두 구 옥 들이라 항상 "고향의 봄"노래를 크게 틀면서 
"정화조"차가 사흘이 멀다않고 지나다녔고 
한집에서 변소를 치면 그 고약한 냄새는 온 동네를 뒤엎었다
또한 그 아저씨도 우리동네만 20여년의 단골이신 분들이라 
어느집이 언제 쳤는지 다 알고 있어서 주인보다 더 잘알고 와서 쳐준다
그런데 우리집 변소는 강가에 있기 때문에 여름 장마때 비만 많이 오면 
물이 변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변소 푼지 며칠사이에 또 다시 푸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러면 난 그 정화조 분뇨 관리사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아저씨께
"아저씨 빗물이 차서 그러니 조금만  깎아주세요...녜??"그러면
"아니 아줌마  여기에다 사이다를 섞어보세요 이게 사이다가 되나??!!"
이런 농담을 하며 여느때 보다 덜 받아가기도 했다
우린 이런 불편을 초월하여 오히려 낭만과 삶의 윤활유로 느끼며
살다보니 어느새 세월은 흘러 세 아이들 다들 청년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아이들의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 조그만 구석말에 새겨놓고 1년전 이곳을 떠나왔다
그리고 이사온 집은 그야말로 화장실이란 이쁜 이름의 변소가 
실내에 있는것도 모자라서 좌변기까지 겸비해 있다

딸아이들은 아주 좋아라하며 적응도 잘 하건만 
남편과 아들 녀석이 아침마다 끙끙대며  변기와의 타협을 못하는 것이다
하긴 처음 이사와서 아들 녀석은 근 열흘간은 변을 못 봐서 학교로 뛰어가서 보기도 했다
이젠 익숙할때도 되었건만 
오늘도 화장실을 나오며 혼자 궁시렁 거리며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자세래나 뭐래나???
언젠가는 이녀석 속시원하게 비울지 원.....
하지만 나 또한 그 발효되고 숙성된 고향의 향기와 "고향의 봄"노래와 함께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지나간 추억의 향수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