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는 정확했다. 친정집 단지내 조경은 굳이 멀리 가을을 느끼러 갈 필요가 없을정도로 곳곳에 단풍과 은행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발끝에 채이는 낙엽들....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내 살덩이들이 오그라 들면서 소름듣는다. 큰 길가에 서있는 플라타너츠... 손처럼 생긴 커다란 잎새들이 떨어지고 있다. 이미 떨어진 낙엽들과 함께 바람과 하나되어 소용돌이 친다. 바삐 움직이는 사이사이를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 나... 내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다잡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버스를 타야 하나 전철을 타야 하나 고민하다 아무리 빨라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과 오르락 내리락하는 계단이 힘들어, 막히더라도 한번에 가는 버스에 오르는 현명한것 같으면서도 바보같은 선택을 하고 만다.을지로 3가에서 만난 초췌한 잠바차림의 남자.. 신호등 건너편에서 손짓을 한다...건너오라구... 총각땐 보기좋게 붙었던 살은 다 어디로 가고 가죽만 남았는지 시댁에선 인물좋다고 사위삼을까 했던 사람이었다는데 삶에 찌들어 초췌해진 모습이 안스럽기까지 했다. 옛 명보극장 옆 허름한 건물이 사무실이라며 일러준다. 마주보이는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심시간이여서인지 인산인해다. 몇년 묵힌 김치로 끓인 찌게와 손짜장이 주 메뉴라는 이 식당엔 바쁘게 사는 직장인들의 모습들로 꽉 차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그림들.... 여유로움과 느긋함과 약간의 나태함이 엿보이는 내고장에서의 모습과는 다른 도회지 샐러리맨들의 점심시간... 겨우 한자리 차지하곤 식사를 주문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의 일로 만난 남편친구였지만 결국 그의 푸념을 덤으로 안고 와야만 했다. 식당을 나와 다시 찻집으로 옮기면서 세시간 남짓 나눈 이야기 속엔 중년의 가장들이 겪고 있는 아빠로 남편으로 그리고 아들로 일인삼역의 고충이 스토리 전부였고, 그 단면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네 삶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걸 다시한번 느끼게 한 자리였다... 제 발등에 붙은 불도 못끄는 사람이 내게 무슨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하여 나를 불렀는지, 고마움은 알겠지만 그의 한숨섞인 푸념에 내 고통이 배가 되어 한층 스산해진 가을날씨가 살을 후벼파는 한겨울 날씨로 둔갑을 하고 만다. 중년들의 고뇌를 혼자 다 이고 있는 듯 삶의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장들... 짊어지고 있는 어깨의 짐들을 내려놓고 가벼이... 아주 가벼이 갈수 있는 방법은.. 서로 타협하면서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갈길 몰라 방황하는 낙엽처럼.... 을지로 한 복판에 서서 옷깃 여미며 서있는 내 모습에 처연함이 감돈다.... 동해바다 음악실<===== 클 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