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온가족이 모처럼 클래식 음악회에 가기로 한 날이다.
남동생이 다니는 자동차회사에서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인지
해마다 열어주는 음악회이다.
아마도 조카들이 어려서 못 갈것 같으니
음악 좋아하는 누이에게 티켓을 가져 주는 덕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좋은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음악적인 취향이 너무도 다르다.
그 사람은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 같고,
난 특별한 장르를 좋아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두루두루 모든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연장이 있기에 미리 식당에 예약을 하여
아이들을 오라 해서 저녁을 먹이고는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공연장 입구에서
남편을 만나기로 약속을 해 두고서는 좌석표를 교부 받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지 못할 것 같다는 남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못내 서운하다.
될수있으면 가는 방향으로 한다던 그의 말에서 일말의 성의를 보이겠거니 ...
믿고 있었는데 그는 역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는 나들이에 대해
별로 의미를 두지 않고 사는 듯 했다.
어디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무슨 음식을 먹고, 무엇을 구경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가족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 무엇을 하고 있다는 공동체적인 의식은
어쩌면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맥락이 될수도 있다고
나는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데 ...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있는 내내
나의 머리속에는 뭔가 풀지 못한 숙제로 고민하며
머리를 싸메고 있는 사람처럼 개운하게 걷어내지 못한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식물을 좋아할 때
그 남자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란 서로 다른 취향을 인정해 주면서도
서로에게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의 생각까지도 읽어 가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을 때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인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이기에
자녀들과 함께 한 약속은 무슨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편은 늘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리곤 한다.
그럴때마다 따끔한 지적을 가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될 수도 있기에 그것마저도 자주는 하지 않는다.
늘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수 밖에는 ...
클래식 음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지
아내의 어깨위에 기댄채 살짝 잠이 든 어느 집 남편의 모습을 바라다 보며
나는 또 그 마음씀이 가상하여 그 마저도 따스한 부부애로 여겨진다.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무엇을 채워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라도
먼저 배려하는 마음만 서로 전하고 살 수 있다면 ....
나의 그 바램은 너무도 큰 욕심일까?
아이들과 손 잡고 앉아서 감미로운 선율에 취해보는
이런 늦가을의 정취를 함께 나누어 보고 싶었는데 ...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혀 성의를 보이고 있지 않은 그 남자에게
나는 분명 심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축구를 보는 시간이 과연 가족과 함께 하는 그 시간보다
값지고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인다.
비록 남편에게 토라진 마음이었지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길이 그래도 조금은 쓸쓸했다는 걸
그 남자는 아마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