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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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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BY 풀 2003-10-29

  이 세상 모든 딸이 이러합니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건데...어느 추운 겨울날 이였던것 같습니다.

  며 칠전 내린눈이 다 녹기도 전에 매서운 겨울 바람에 꽁꽁 얼어 붙어 버렸지요.

  우린...엄마와 삼남매는 집에서 가까운 시장을 다녀오던 길이 였습니다.

  가까워도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은 가야하는...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기에는 힘겨운 여정이였을 것입니다. 

  이제야 짐작해 보건데 분명 그러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사셨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만,  엄만 덩치큰 짐보따리를 들고 계셨습니다.

  그리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덩치는 마치 이불 같은것을 큰 보자기에 싸놓은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오자 우린 뛰었습니다.

  정거장을 한참이나 지나서 서버린 버스가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엄마와 아이셋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참!  그때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습니다.

  빨리 올라타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우릴 바라보고 있었지요.

  오빠가 올라타고, 동생이 올라타고...달리는 길이 얼마나 미끄러웠던지 전 그만 미끄러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창피 하던지...엉덩이가 아픈지도 모른채 얼른 달려가 버스에 올라 탔습니다.

  그때는 왜 그리도 버스에 사람이 많은지...작은 아이 셋은 옹기종기 어마 곁에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엄마의 덩치큰 짐은 안내양이 서있는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한 숨을 돌리고 있을때 안내양이 엄마를 바라보며 짜증나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짐을 다른 자리로 치우라고...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짐을 옮기셨지만, 무안한 듯 미소를 띄우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그때 처음 엄마가 가여워 보였습니다.

  엄마를 향한 가슴져밈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된 작은 계집아이...

  그때의 작은 계집아이 눈에 비친 엄마의 얼굴은 가슴시리도록 져며오는 아픔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짐을 치우는 엄마의 손길이, 얼굴이 왜 그리도 안타깝고 가여워 보였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코 끝이 찡해옵니다.

  두 눈이 촉촉이 젖어옵니다.

  알수없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가슴아리도록 밀려오는 슬픔에 소리내어 울고 싶지만...제 슬픔은 언제나 이불속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소리내지 못하는 슬픔에 때로는 목이 메이지만 그래서 가슴이 아파오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엄마의 모습은...힘겨워 하셨습니다.

  재봉질에, 손뜨개에...손뜨개를 하실때면 실타래 푸는 일은 언제나 제 차지였습니다.

  그것도 자주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답니다.

  여리고 작은 여자아이의 손은 아주 곧잘 털실 푸는 일을 잘 해냈답니다.

  때론 그것이 싫어 요령도 피우고 뺀질대긴 했지만요...

  엄만 아주 오래 일을 하셨습니다.

  아빠의 월급이 너무도 작았던 탓에 그럴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몸이 약한 엄마는 참 많이도 그리고 자주 아프셨습니다.

  힘겨운 시집살이에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던 가여운 엄마.

  아홉살 어린 나이에 엄마(외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가여운 엄마.

  ......

 

  결혼전엔 몰랐습니다.

  아니... 너무 오래 보아온 엄마의 삶이 당연시 여겨졌나 봅니다.

  지금도 골다공증에 편두통에...여기저기 안아픈곳이 없는 우리 엄마.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으신 아빠의 수술비로 여전히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

  언제쯤이면 엄마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런지...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먼저 애려옵니다.

  눈물이 먼저 흘러 내립니다.

  내 모든것 다 내주어도 모자를 엄마의 애뜻한 사랑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저축까지 하고 사는 내 형편이 때로는 죄인듯 여겨지는 이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합니까.

  남편 몰래 용돈 드리며 이것저것 챙겨드려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은 무얼로 채워햐 합니까.

  또 가슴이 아파옵니다.

    아주 많이...

 

  전 다짐을 했습니다.

  난 내 자식을 위해 내 모든걸 다 퍼주지 않으리라.

  내 모든걸 퍼주어 내가 늙어 가진게 없어지면 내 아인 나를 가여워 할지도 모르니까.

  내 아이들이 이다음에 컸을때 나로 인해 눈물 흘리게 하지 않으리라.

  내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나에게 기대고 의지하고...힘들면 찾아올 따스한 보금자리를 만들리라.

 

  전... 많이 울었습니다.

  크면서...결혼을 하고도...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아픔을 압니다.

  그 아픔은...때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심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짐을 합니다.

  난...나로 인해 아파하는...내가 엄마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은 내 자직에겐 흘리지 않게 할거라고 매일 다짐을 합니다.

  전 강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내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하셨듯 맹목적인 사랑은 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서 훗날 내 자직이 나를 생각해도 눈물이 흐르지 않게...그렇게만 사랑하렵니다.

 

  나쁜 딸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를 생각해도 눈물 같은건 흐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슴 밑바닥부터 고여 흐르는 이 슬픔은...가슴저림은...

  평생을 두고 고쳐지지않을 불치병이기에...때로는 나쁜 딸이 되고 싶습니다.

  그때는...그시절에는 당연했어...이렇게 생각하며...

  엄마는...부모는 그런거야...그러니까 부모지...이런 싸가지 없는 생각도 할 줄 아는 그런 나쁜 딸이고 싶습니다. 

    나쁜 딸은 눈물 같은건 흘리지 않을테니까요.

  이불속에서도...

 

  차라리...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