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38

유년 그 상처


BY 마당 2003-10-21

 

자꾸만 내게서 달아나 버리는 유년의 길목은 너무도 아득하여 되새겨 볼수록 점점더 작게

쪼그라들어 그나마 남아있던 기억의 작은 알갱이마저 산산조각으로 부숴놓기에

겨우겨우 더듬고 들춰내서 찾아낸 보석같은 기억줄기는 내가 살아온 인생

궤적속에서 가장 아프기도 하고 달척지근했던 시절이었던걸로 회억한다.

 

육이오 참상이 터지고 칠년후에 태어났으니 그 시대적 배경이란 암울 그 자체였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함께 겪었던 삶의 얼룩무늬들은 구구절절

주석을 달지 않아도 모두가 체험했던 역사이고 경험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다.

척박했던 시대적 배경속을 헤치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상처 하나가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늦봄이었던걸로 추적한다.

동네 "영옥"이라는 내또래 아이가 고구마를 깍아준다고 칼을 가져오라고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내나이가 아마 추정해보건데, 네댓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왜그리 문지방을 굵은 통나무로 높게 막아놨던지 지금도

그 턱높은 대문 문지방을 생각하면 소름이 오르르 돋는다.

순진하기 이를데 없는 아이가 고구마 한 개에 목숨을걸고 훗날 두고 두고

쓰린 상처를 보듬으며 아픈 유년을 되새기는 흔적을

 만들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찌됐든 그 아이가 시키는 대로 부엌에서 무식하게 생긴 무쇠식칼을 찾아들고

걔네집을 향해 뛰어갔던것 까진 그래도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무진장

행복했었으리라.

그 턱높은 대문까지 가긴 갔는데 넘어가는 것이 문제로다.

저길 넘어가야 달척지근하고 고소한 고구마를 깍아먹을 수 있을텐데 어린

계집아이는 눈을 빛내면서 넘어갈 궁리로 잠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별안간 다리가 길어지고

키가 커지지 않는한 구렁이 담넘듯 넘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앞에 기어서

넘는걸로

단정짓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몸보다 훨씬 우람한 나무기둥을 타고 칼을든채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넘어가다가 거의 다 넘었을 무렵 그만 스르르

쬐끄만 몸통이 땅으로 곤두박히고 말았고

동시에 들려있던 커다란 무쇠식칼의 번뜩임은 막 싹튼 연두색 잎사귀같은

어린 계집아이의 입술을 그대로 관통시키고 말았다.

황토흙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던 덩어리 덩어리

선혈들의 낭자함과 동시에 온동네를 뒤흔들던 괴기스런 울음소리에

놀라 모두가 내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던

공동우물에서 빨래를 하던 엄마도 사색이 되어 고꾸라지듯 달려오셔서

나를 안고 겨우 대처한다는 것이 공동우물로 데리고 가셨는데,

허연 양은 대야에 끊이지 않고 쏟아지던 분홍빛 핏빛은 지금도

아스라히 남아서 비오려할 때면 신경통 도지듯 씀벅거리며

나의 심육을 아프게 옭아매는 주범이 되었다.

나를 등에업고

구멍가게로 야채밭으로 꽃밭으로 드나들며

아무리 달래도 그칠줄 모르는 울음을 엄마는 참으로

난감하고 당혹한 맘으로 애태웠을 것이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이런 변고가 생겼구나

참으로 자책의 시간을 보냈을 엄마에게

동네사람들이 가져다주는 민간요법이 그나마 위안이고

해결책이었으니 어쨋든

피는 멎었지만 며칠간을 섭생에 어려움을 겪으며

어렵게 어렵게 상처는 아물어 갔을 것이다.

어쨋든 그 유년의 아득한 길목에서 주어온 아픈 상처는

지금까지 나를 쫓아다니며 그때 그시절의 고달팠던 삶을 얘기해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상처가 입술안쪽으로 생겨서 겉으론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여자라서 립스틱으로 흔적을 가릴 수도 있으메 그나마 감사하다.

빈곤의 질곡속을 헤치고 이 풍요의 시대를 맞기까지

고단했던 우리시대 삶의 언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쓰디쓴 멍자국으로 남아

가끔씩 흐릿해지는 기억저편을 선명한 상처로 도지게 만들고 있다.

아 옛날이여 !!

그 어린시절 고구마가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그시절

고구마 에 목숨걸었던 그시절

그 작고 앙징맞았던 소녀는 이제 고목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고구마가 여전히 싫지 않음은

고구마속에 녹록히 녹아있는 내 유년의

시린 추억이 나를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어린시절이 좋았노라고  자꾸만 자꾸만  미화시키고 있기 때문일까 ?

나는 지금 너무나 멀리와있는 그길로 또다시 걷고싶다.

또다시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