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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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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가을밤에 장님, 씨름 구경 하기.


BY 雪里 2003-10-20

이나이 먹도록 나는 아직 종교를 갖지 못했다.

 

학생시절,

막차를 놓치면 친구네 집에서 자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친구의 부모님 두분이 새벽기도를  다녀오신후

한분은 마당을 쓸고 계시고 한분은 부엌에서 아침을 짓고 계셨던

다정하신 두분의 모습을 보고는

가끔씩 절에 나가시던 엄마의 모습보다 좋아 보여서

나중에 종교는 기독교로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어머님이 열심히 절에 나가고 계시며

 "신도중에 젊은이들도 많으니 같이 가자"는 어머님의 권유에도

선뜻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니

아무래도 내가 종교 생활 하기는 그른 성 싶다.

 

그래도 생활 속의 종교라 했던 말처럼

어머님이 계시니 절에서 행사를 한다는 안내 문구를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아 얼마전부터 아버님과 어머님께

영평사에서 "산사 음악회"를 하니 같이 가시자고 말씀을 드려 놓았었다.

 

시부모님과 친정엄마를 모시고 이른 저녁을 대충 챙겨 먹고는

주차장이 붐빌것을 염려하여 일찍 나섰더니 왠걸,

2키로 전방부터 자동차의 진입을 막고 있다.

차는 거기에 세워두고 사찰에서 제공하는

승합차를 이용하여 이동 하도록 하고 있었다.

 

세 노인들의 걸음걸이는 이미 어둠에게 뒤 떨어지고 있었다.

시어머님이랑 엄마는 미리 앞선다고 가시더니

결국은 이산가족이 되어

시아버지랑 며느리가 손을 잡고 한참을 헤매다가

남편을 중계해서 걸려온 휴대전화로 겨우 만나 무대앞에다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보이는 자리에서

사회자인 아침마당의 이금희 아나운서가 나오자 어른들이 좋아 하신다.

저렇게 귀염있고 복스럽게 생겼는데 왜 시집을 못가고 있나 모르겠다고

두 안사돈끼리는 연실 재미 있으시다.

 

두드락의 퍼포먼스,명창의 회심곡,

정태춘의 통키타연주와 노래.....

 

산사의 고요나 정막 같은건 없었다.

모두들 하나되어 무대가 조용하면 관중도 조용하고

무대가 들뜨면 관중도 흥분이 되어 박수를 치다 소리를 지르다....

 

백인영과 친구들의 연주까지는 아무 소리 없이 앉아 계시던 세분이

째즈피아니스트인 이루마의 피아노가 연주되자 두런거리신다.

 

무르익은 가을의 초저녁날씨는

내의까지 입고 오신 어른들이지만 쌀쌀하게 느낄만큼  스산스러웠다.

 

"차 키 줘라, 우린 먼저 내려가 차에 들어가 있을께 "

" 점점 더 재미 있어 지는데요 ....."

 

벌써 일어나셔서  어머님이랑 엄마는 앞서신다.

연신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들리질  않는다.

차키를 아버님께 넘기고 앉아 있으니 좌불안석이다.

 

이은미의 화끈한 무대는 라이브 가수임을 실감케 했다.

꽉껴는 검정티 밖의 뽀얀 우윳빛 피부가 시원한 노래보다 더 부럽다.

노란 색의 긴퍼머 머리가 화려한 조명아래 흔들리기 시작하자

가수의 손짓에 따라 모두가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대웅전 앞 무대나 마당의 관중이나 들썩들썩.

어쩌면 갑자기 시끄러움에 부처님이 경기 하실것 같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옆 사람이 아이의 보챔에 일어서고 만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불안해서 그 뒤로 매달려 나왔다.

 

깜깜한 밤의 산골에 죽 늘어선 포장마차가

오뎅국물의 따끈한 김을 연신 흩어 뿌리고

고소한 꼬치구이 냄새가 일찍 먹은 저녁의 허전한 뱃속을 뒤 흔든다.

 

가뜩이나 밤눈에 약한 내가 빛이 없는 길을 걸으니

가끔은 허당을 딛어서 몇번이나 넘어질뻔했다.

 

기다리실 어른들이 염려 되어

허리 아픈것도 다리가 땡기는것도  잊고  달려서 차문을 여니

세분이서 오붓하게 꼬치구이를 잡숫고  계시다

내게 은박지에 싼것을 내미신다.

 

꼬치구이의  맛보다는

차안에서  어른들과 먹는다는 맛이 훨씬 맛있었다.

 

끝까지 못보고 오는 음악회 였지만

어른들과 함께 한 이시간이 내겐 또 한장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들 할 얘기는 많으시다.

 

"근데, 엄마, 아까 제게 뭐라고 하셨어요?"

 

" 응, 그 피아논가 뭔가 말이여, 우린 장님 씨름구경 하는격이여~! "

 

"뭐라구요????"

 

까만밤,

시골길을 달리는 내 차의 라이트 불빛이 유난스레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