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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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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남자!


BY 수련 2003-10-18

오늘은 아들이 한달동안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다.

어제부터 전화를 기다렸건만 감감무소식이다.

처음 도착지인 태국에서 전화 한번 오고는 여태 전화 한통이 없다.

떠날때 "전화 안할거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라는 말을 남기더니...

무정한 놈!  그렇다고 오는 날까지 전화를 안하냐.

 

학군장교로 복무하면서 그동안 적금을 넣었는데

아직 만기가 되지 않았는지 통장을 내밀더니

" 이거 담보로 돈 좀 빌려주세요"

이천만원짜리 3년만기 정기적금 통장이었다.

월급을 받아 최소한의 용돈만 제하고 꼬박 꼬박 부었나보다.

내 아들이지만 내심 기특하다.

내년 3월이 만기인데  나머지는 어찌 넣을려고??

 

아들놈의 말인즉,

제대를 했으니 적금 부을 돈도 없고

시간적인 여유없이 대학졸업하고 바로 연이어 군복무를

하였으니 한달 정도 배낭여행을 다녀 오고 싶단다.

적금이 끝날때 까지 기다릴려니 취업준비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어중간하다며 미리 갔다와서 공부를 하겠으니

나머지 적금도 부어주고 돈도 빌려주면 만기가 되면

제하고 나머지만 돌려달란다.

 

최소한의 경비로 한달동안 다녀올 계획을 다 짜놓은 모양이다.

어느새 동대문 시장에 가서 큰 배낭을 사고 주섬주섬 옷도 챙겨넣고

상비약도 넣는다. 침낭도 가져가는걸 보니 길거리에서 잘려나.

"얘! 튜브에 든 고추장 사즐까?" 

" 에이, 됐어요.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마세요"

배낭에 손도 못 대게 한다.

어느새 저렇게 자랐을까.

 

남편도 가끔 아들하고 마주하고 앉아 맥주잔을 기울면

 아들과 술 친구가 된것이 흐뭇한가보다.

마누라를 앞에 앉혀놓으면 한잔 따르고 "이게 마지막 술입니대이"

따를때 마다 싱강이를 벌이는데 주는대로 받아마시고

따라주고 ...아들놈의 술이 더 센지 나중에는

남편이 오히려 " 인자 고만 묵을까?" 두손을 든다.

 

하루는 남편이 술이 많이 취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발도 벗지않고 성큼 마루로 올라서서 노래를 부르니

"어,어, 아버지 구두는 벗어야죠, 그리고,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이웃생각하셔서 조용히 들어가서 주무세요"

" 오냐 오냐, 우리 아들~ 너거 옴마는 파이다.잔소리만 할줄알재.."

눈을 흘기며 한쪽에 서서 뒤짐지고 서있는 날 보더니

"어이, 마누라, 술상차리거라이 , 우리 아들하고 한잔 하거로.."

"아버지, 늦었으니 오늘은 그만 하시고 내일 하시죠"

그러면서, 지 아버지를 번쩍 들어서 안방까지  모시고 간다.

 

어이쿠! 힘도 좋다. 아들에게 들려가는 남편이 왜그리 작아 보이는지.

예전 같으면 만취가 되어 집에 와도 술상을 앞에 놓고

두어시간은 사람을 앉혀놓고 했던 말, 하고,또 하고.. 진이 빠지게

만드는데 아들이 제대하고 오니 이렇게 편할수가..

 

"아버지, 이제 술도 조금씩 드세요. 술이 과하다보면 실수도 할수있고

건강도 해치는데 이 참에 술도, 담배도 끊으시죠"

언젠가 내가 그 소리했다가

"당신이 내 술 사줬냐? 담배를 사줬냐? "하며 시비를 걸어 한바탕

싸우고 난뒤로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실컨 피우라 싶어

아무말도 안했다.

 그런데, 아들이 조목 조목 말을 하자 그저 알았다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수적인 남편때문에 항상 내가 아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이리저리 변명도 해주고 감싸주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나의 방패막이가 되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남편과 아들의 국을 뜨면서 아들의 국그릇에 고기를 더 많이

집어넣게 된다는 글을 어디서 읽었던것 같다.

자식에 대한 어미의 애틋한 마음인가.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짝사랑이라며 큰 기대를 하지말라던

나이 드신분들의 말도 생각난다.

몇년만 있으면 지 짝을 만나서 가장노릇을 하겠지만 아직은

내 품에 있는 내 자식이니 마음껏 아들을 부려먹어야 겠다.

장가가서 그랬다가는 며느리에게 눈치받는 시어머니가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