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차 공격이라하면
두 명의 스파이커 중에서 한 명이 속이기 위한 스파이크 동작을
취하면 이를 막기 위해 상대 블로커가 점프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다른 위치에 있는 스파이커가 때리는 것이 시간차 공격, 퀵 공격을
속임수로 쓴다.
모든 사건에 있어서 시간과의 적절한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
나의 감정과 그의 그것 ..
나의 흐름과 그의 그것
나의 이기주의와 그의 그것
나의 입장과 그의 입장
나의 그것으로 족할 수 없다는 기준과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엷은 판단
시간에 대한 적절한 변화
그 코드가 맞지 않을 때는 언제나 불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시점에서 시간은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나의 감정은 이미 그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함의 설정이 이미 소멸되고 없는데
그는 아니거나 ..또 그와 반대로 그는 남아 있는 미련에서 버둥거리고 있는데
나 혼자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그 흐름이 지난 다음에 그때가 아주 절묘한 타임이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하는 자존심이 엉뚱한 곳으로 감정을 쳐 박아서 서로 아주 곤란한 상황까지 몰고 가게하고 더 많이 아플 때가 발생하고야 만다는 것을 경험한다 ..
그래 먼저 손을 내어 밀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이해하기를 원하면서
그런데 그게 참 아이러닉하게도
생각과 즉시 행동에 옮겨지지 아니한다 ..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쓸데없는 바램은 이미 바닷물 속으로 풍덩하고 마친 이후이니 ..
그걸 수습하려면
서로가 젖은 옷을 온전히 말리고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하고
온갖 슬픔으로 가득 찼던 가슴까지 다시 덥혀야 하는
불상사가 이미 내 것이 되고 만 것이다 ..
그걸 안다고 해도 결코 다시 돌리고 싶지 조차 않은
최후의 오기 같은 시간도 그 속에
내포되어 있고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파야 하는 것이다 .
주변 상황까지 싸늘하게 식히면서
그리고 ..별스런 기억까지 다 다시 떠올리면서
나의 아픈 기억의 저장창고만이더 단단해질 뿐이다 ..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은 진정 아닐 진데 ..
서로의 코드는 19년 간이나 맞추어 왔지만
결코 쉽게 꽂아지는 것은 아니다
늘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산다고 해도 바로 보는 방향은 그렇게나 다르고
이미 다른 가슴과 문화와 습관 속에 살아온 다른 방식 속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
되돌리기엔 놓쳐버린 시간들
그래서 나는 사랑도 놓쳤고
객 적은 오기와 자존심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적까지 있다
차라리 그런 것들이 한낱 무거운 외투라고 생각하고
살짝 벗어 던질 여유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얼마 전 홀로되신 큰 오빠를 모시고 있는 질부가 얼마간 친정으로 가출을 했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질부의 입장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질부는 종부로서의 자존심과 오기로 도리를 다하고
늘 열심히 일하고 깔끔한 며느리이고 아내였다
더구나 남편이 되는 조카는 사회의 어려움도 탓은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경제력을 믿고 돈버는 일에 소홀히 한 점도 인정이 된다
담벼락을 기는 한이 있어도 홀로되신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질부의 표현을 빌면
작은 동서나 아가씨도 단 한번이라도
아버님을 모셔가려 하거나 ..자기의 입장을 말로는 이해한다면서
숨쉴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네들을 귀찮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현까지 드러내면서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그래 사람들이 그렇지
큰아들 큰며느리만이 나를 모셔야한다는 이상한 고집으로
며느리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우리 큰오빠의 모습이 답답해도
질부는 용케 10년을 버텨왔다
당차게도 그 재산을 지키고 유산을 받겠다는 말을 하면서
"고모님 저는 이십년 밥상을 차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아버님 결혼하시는 건 반대여여 ..."
하던 질부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목을 차고 올라오는 모양이다
질부는 차라리 아버님이 병상에 계시면 더 잘해드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다시 말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래 ..
질부가 내게 하소연하면
나의 짧은 경험으로 아주 근접하게 이해해주려하지만
그것은 아주 조금일 수 밖에 없다
언제나 남의 염병보다 나의 손가락 끝을 다친 것이 더욱 아프다고 하질 않는가 .
질부는 결국 남편이 가장 밉고 --자기에게 ,이리도 큰짐을 짊어지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으로 남편이 가장 불쌍해서 돌아왔노라고 말한다
그래
돌아오기는 잘 돌아왔는데
영역을 만들지 못한 상태로 돌아온 것은 아니 나간만도 못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버티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길 해주었다
물론 시댁의 고모 입장이 아닌 질부의 입장으로
그 질부의 자유와 권한과 영역이 조금은 좀 더 넓어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동안
늘 그것을 느꼈다
애지중지 아끼는 막내아들을 빼앗긴 듯한 기분 뿐이 아니라
매사 나를 시험하는 듯한 마지막 커트라인 같은
살얼음 같은 시간들 ...
오는 손님마다 양복을 해주라는 시어머님의 고집 ..
결국엔 시내에 나가서 양복감을 끊고
나는 신랑을 혼자 집에 보냈다
막차를 탈 때까지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 그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불과 몇 달도 채우지 못한 채 이혼을 하고 부모님 앞에 죄를 짓는 딸이 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
내가 막차를 타고 돌아갔을 때
신랑은 비가 오는데서 끝도 없이 나를 기다렸고
어머님은 예전의 그 무서운 어머님이 아니셨다
어머님도 당신의 아들이 슬픈 결혼 생활을 하다가 막을 내리게 하고 싶진 않으셨다
"돌아왔으면 되었다 ..그만 자거라 ~~~~"
나의 조그만 숨통이 생기고 영역이 생겼다
서로 시간차 공격을 노리면서 그 영역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순전한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대방은 꺽이고
더 이상 분노나 단절이나 불운한 상황까지는 전개 되지 않는 상태로
시간의 분석
타이밍의 절묘함
이것이 우리의 작은 운명을 조정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