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빨아도 하얗게 안되니??
아버님이 내미시는 런닝셔츠를 보니 아뿔싸..
빨아놓은 건데도 목부분이 조금 누렇습니다.
언젠가부터 흰빨래는 흰빨래대로 분류세탁은 꼭 하는데..
면이 고급화 되고 세제가 좋아지고 세탁기 기능이 향상되면서
꼭 삶아야겠다는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잘 삶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송스런 마음에 아버님 손에 들고 계신 런닝셔츠랑
빨랫줄에 이미 빨아서 널어놓은 런닝셔츠 걷어다가
옥시크린이랑 세제 섞어 풀어서는 푸우욱~~
뜸까지 들여가며 오래도록 삶았습니다.
그리고는 빨래 방망이질까지 탕탕해서 말간 물 나올때까지
짤짤 흔들며 행궈놓고나니
우와~~ 요술처럼 빛나는 하얀색 런닝셔츠들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내일은 아예 이방저방 다 뒤지고 다니며
속옷들 왕창 꺼내다가 삶을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
아.. 원래 이 이야기를 하려고 빨래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오늘따라 한참을 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별채 옥상에 올라가면 우리동네가 훤~히 보입니다.
동네로 들어오는, 갑천과 함께 흐르는 뚝방길도 보이고
산밑으로 시원하게 뚫린 아스팥트 포장길에 요즈음 새로 세워놓은
가로등도 보이고 3년전에 새로 생긴,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이 보이는 중학교도 보이고
동네 앞을 가로지르는 대진 고속도로 위랑 갑천너머 흑석리 가는 길로
쌩쌩거리고 달리는 차들도 다 보이고
그 너머로 가려진 산들도 보이고
갑천너머 구봉산 끝자락이랑 멀리 계룡산까지도 보입니다.
온통 거대한 초록, 초록들입니다.
뭉기뭉기 온 사방천지에 구름처럼 덮인 듯한 초록들이
하얀 아카시아 보석들까지 군데군데 주렁주렁 달고서
싱그러운 5월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고속도로와 흑석리 가는 길 위로 쌩쌩 바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라지는 차들이 꼭,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의
피 터져가며 이리저리 몰려 다니다 죽는
벌레같은 종족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역겨움이 느껴져
움직임이 없는 듯 느껴지는 산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세상엔 어느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걸 잘 압니다.
태양과 달이 움직이고 이 지구조차도 스스로 돌며,
말없는 식물들이 천천히 자라 대지를 덮고
제 아무리 단단한 돌조차도 비 바람에 마모되어지고
사물들은 천천히 변하거나 부식되어가고 있는 중일테니까요..
그런 거대한 변화와 움직임속에 한낱 벌레만도 못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그 느리고 장엄한 움직임앞에 한없이 경망스럽게,
유독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리를 지어 날거나 한획을 그으며 사라지는 새들이나
한낱 쓸모없는 날파리들이나 혹은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총총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이 모두 이 광활한 우주가 기뻐할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제 나름대로 아름답게 움직이는데,
유독 사람들만 이 모든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채
제 멋대로 속도를 내며 날뛰고 돌아다닌다는 생각.
그런데요..
다 늦은 오후의 동쪽 하늘에
누군가의 고요히 미소짓는 얼굴같은 희미한 반달이
떠있지 않겠어요..
아.. 아름다와라..
나 그러고보니 저 달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차고 맑은 듯 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언제나 늘 그자리에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고요히 제자리 지키는 것 같지만 천천히 느리적느리적
서녘으로 흐르는.
들뜨기 쉽고 곧잘 화내는 나를 고요히 참아주며
따사로운 미소로 누그러뜨려주는,
그런 달같은 사람들을 나 좋아하는데.
나 좋아하는데..
소리도 없이 이 드넓은 세상을 뒤덮는 웅대한 초록..
초록바람 초록합창 초록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고요한 사람들,
서서히 움직이며 변하는 중인 자연을 거슬리지 않은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데.
피치 못하고 천천히 다가올 쓸쓸한 변화까지도.
그렇다고요..
이젠 점점 격렬하고 빠른 것들에게선 한계를 느낀다고요..
죽을 똥 살똥 모르고 바쁘게 벌레처럼 움직이는,
문명의 오만한 주인들..
특히 자기 그릇대로 함부로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거나
마음을 마음 그대로 받아 들일 줄 모르고
향기로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위한 의무를 잊은채
제멋대로인 사람들..
이젠 점점 이기심인지 모르지만 버거워져서 곁에 두기 싫어진다고요..
난 이제,
천천히 오랫동안 지금까지 내 곁에 머물러 곰삭은 그리움들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서만 늙고 싶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겠죠??
더 이상 다시는 할퀴고 할큄 당하는 아픈 상처 없이
거대한 자연의 느린 움직임처럼 진솔한 삶,
내가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살게 되겠죠??
炅喜.
** 올 봄에 써놓은 낙서 옮겨 놓으며 처음 인사 드립니다..
아줌마 닷컴에 아이디 만든지는 꽤 됐는데..
자리펴기가 영 힘들더군요..
빨리 글 올리라고 자주 괴롭힌(?) 내 좋은 친구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