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쯤의 일이었다.성당 미사시간에 앞에 나가서 성경말씀을 읽게 될 일이 있었다.그 연습을 하던 중에 아주 오래 전부터 궁금해 했던 것이 생각나서 옆에 있던 남편에게 물어 보았다.
"여보,우리 말에는 좀 모순이 있는 것 같아요.적힌 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참 많아 보여요.괜히 이런 저런 법칙 때문에 쓰인 것과는 다르게 발음 나는 것들이 많으니 처음 배우는 사람은 참 불편할 것 같네요.그냥 읽히는 대로 쓰든지..."
무슨 말 때문에 그러는 지를 묻는 남편에게
"왜 있잖아요.`무엇 무엇 했습니다'라고 할 때 옛날에는 `읍니다'라고 썼는데 이젠 `습니다'로 바뀐 거요.이왕 바꿀 거면 확실하게 `슴미다'로 제대로 고치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뭐라고?다시 말해 봐 `습니다'를 뭐라 한다구?"
"슴미다"
그러자 남편은 푸하하 하고 웃었다.
"누가 `습니다'를 `슴미다'로 읽는다고 그래?바보같이"
순간 나는 오히려 남편이 바보 같아 보였다.`아니,그걸 여태까지 잘 모르고 살아 오다니...어휴,답답한 사람.'이런 심정으로...그리고 그 날 성당에서는 38년 동안 늘 써 오던 그대로 '슴미다'라는 분명한 발음으로 성경을 읽었고 그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커다란 성당 전체로 울려 퍼졌다.
다 읽고 내려 온 나는 의기 양양하게 남편을 바라보며 `흥,내가 맞지요?'하는 눈길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 온 남편과 나는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이제 남편은 꼼짝 없이 내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머님과 아이들에게 차례대로 내가 물어 보았다.
"어머님,했슴미다라고 해 보셔요." "했습니다"
"얘들아,했슴미다라고 해 봐." "했습니다."
"보세요.제 말이 맞지요.다들 `했슴미다'라고 하잖아요!"
사실 그 소리들이 잘 분간이 가지 않게 들렸던 것이다.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 본 결과 어이없게도 내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의심치 않고 써 왔던 `했슴미다'가 오히려 잘못된 발음임이 밝혀졌다.그런데도 나는 이건 `우리 가족의 수치야!'라고 생각할 만큼 내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이 곳 저 곳에 좀 더 확인해 본 뒤 완전히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묘한 충격을 느끼게 되었다.사실은 초등학교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초록색을 파랑색으로 알고 있었는데 후에 초록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 참 어색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이번 일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꽤 큰 충격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사람이 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사실들도 어쩌면 어느 순간 손바닥 뒤집 듯 그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내가 알고 있는 그 세계 안에서 그것만이 전부인 줄로만 알며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오래도록 그 세계에만 길들여지다 보니 자꾸만 그것에 익숙해져서 그것만이 전부이며 진리라고 믿고 싶어 하고 또 고집하려는 것 같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믿는다.그러다가 바깥 세상에서 우물 속으로 무언가가 들어 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숫제 무시해 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내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생각 우물 또한 그와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그랬으니 이번 일도 남편과 가족들이 알고 있는 것을 끝까지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지,내 생각이 틀렸으리라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질 않았던 것이다.
가끔은 그래서 두렵다.아예 영원히 모른다면 차라리 낫겠지만 인생길 가다가 언제 어디서 내가 진리라고만 믿어 왔던 가치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들을 맞게 될 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할 것 같다.
`저는 몰라요,그저 텅 빈 공간이에요.무엇이든 가르쳐 주시고 채워 주세요.'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슴미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내 아집에 놀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