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팥 빙수를 꺼 냈습니다.
혼자 먹기가 미안해서(하나밖에 안 남았드라구요)
우유를 붓고 먹기 싫어하는 위에 부분 크림이 얹혀 있는 걸 한술 푹 떠서 남편에게 내밀었습니다.
(평소에도 그 부분은 곧잘 남편에게 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 먹었거든요)
그건 남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거든요.
안 먹는다고 고개를 외면 하데요.
조선 사람 한번 더 권하는 맛에 먹는다는 말 생각 났습니다.
반대쪽으로 가서 다시 한번 더 남편에게 권했습니다.
화를 내며 안 먹는 다네요.
에라 혼자 다 먹었습니다.
오늘 뭐 밖에서 안 좋은일 있었는가 보다 하고 이내 잊어 버렸습니다.
애들도 다 나가고 없는 저녁 식탁에 둘이 앉았습니다.
된장찌게에 조기 3마리. 호박잎 찐거. 멸치 ...가득한 반찬 가짓 수에 내심 나도 당황했습니다
너무 잘 먹는 거 아냐? 내가 차린 밥 상에 흐믓했습니다
그런데 환상을 깨는 목소리.
'라면하나 끓여 온나'
'무슨 소리..'
'술 안주 없다 아이가 라면 끓여 온나'
나는 말 없이 끓여다 줍니다.
어디 그렇다고 남편이 라면 만 먹나요 .
아닙니다.
이것 저것 다 먹을 거 면서 나 한테 또 심통 부리는 거겠지 생각했습니다.
소주 한 잔 걸친 불그레한 얼굴로
'니 병원 퇴원 내 때문에 했다고 엄마한테 그랬나?'
합니다.
'그래요 그건 사실 아닌가요?'
'사실이지 '
남편은 못 마땅한 얼굴로 슬 슬 본론을 꺼냅니다.
결혼하고 24년 만에 여고 동창4명이 여행을 갔지요
어렵게 남편 허락 받아가지고 말입니다.
제가 제일 허락 받기 힘들었던 거 두 말할 필요 없었구요.
허락이라기 보다 거의 통보 하다시피 해서 얻은 여행이었습니다
무사히 돌아 왔음 좋았을 걸 그만 교통사고가 나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입원수속 하는 날 병원에 온 남편 얼굴은 친구들 보기 미안 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사고 낸 친구는 다친 와중에도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쩔쩔 메고 배 내밀고 있는 남편 때문에 전 또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속 상해도 겉으론
'마 괜챦습니다'
해주면 좀 좋나요.
나도 친구 보기 엄청 미안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격으며 입원 5일째
남편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목소리가 못마땅 한 톤으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있는 게 싫어 서둘러 퇴원을 해 버렸습니다.
서둔 퇴원 탓인지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밤새 아파 끙끙대도 약 한번 병원 한번 가라는 소리 안합니다.
내가 놀러가서 다친거라 저도 내색 안 할려고 많이 노력 했습니다.
세월가면 해결 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견딥니다.
그래도 핫 팩은 사무실에서 하나 가져다 주더군요.
그거라도 고맙다고 나를 위로 하면서 살고 있는데 말 입니다.
오늘 안부 전화하신 시어머니께 한 하소연이 못 마땅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산장 주인과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난리를 부립니다.
나란히 산장 주인 옆에 제가 앉았다나요.
'그게 뭐 어떻냐고 우리가 좋은 나무를 보면 예쁜 바위를 보면 옆에 서서 찍는 거와 뭐 다르냐구....'
반박했지요.
'낮선 남자 옆에서 제가 웃고 있다나요 참 내'
'100살 무도 남자는 남자 아이가...'
기가 차대요. 문제는 또 있대요.
제가 감사 편지와 같이 산장 주인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보내 겠다는 편지를 써놓은 걸 보고 또 야단이네요.
'이 건 어디까지나 우리 4사람 대표로 내가 감사의 글 보내는 거 뿐이야 애들이 나보고 쓰래'
했더니 노발 대발 입니다.
'해마다 그 산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굳이 니가 뭔데 글을 보내냐....'
는 겁니다.
때 맞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남편과의 말 싸움과 신경전은 대충 마무리 되는 듯이 끝낫습니다만.
마치 제가 못 할 일을 한 것만 같네요.
남편이 너무 보기 싫습니다 .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안타깝습니다.
좀 더 합리적으로 똑똑하게 남편에게 조리 있게 말 못 한 제가 너무 바보 같습니다.
며칠 동안 남편이 꼴도 보기 싫을 겁니다.
그러면서 어째어째 또 살겠지요
어디 이 만한 일로 이혼을 하겠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살긴 살아야 하는 데...속 터집니다 만두 속 터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