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허구헌날 아이의 어린이집을 땡땡이 시키면서 컴백을 위한 본거지를 알아보고 다녔읍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도 족히 5시간은 걸리는 거리인지라 도착과 동시에 숙소마련이 최우선이었지요. 시댁이 있는 포천은 2시간을 더 가야 하고 가까이 있는 친정집은 집이 비좁아 불편하고, 그래서 처음 몇번은 남편친구,옛날 회사 동기들 신세를 졌지만 그것도 반복되다 보니 밑천이 들어나 다음부터는 아예 찜질방을 애용하게 되었지요.
차가 덜 막히는 밤중이나 새벽을 타다보니 그편이 더 편하기도 했구요.
먼저 살던 동네를 거점으로 아는 사람들을 죄다 찾아다니며 컴백의 예고편도 미리 해 놓고,
창업을 예고하며 영업상의 협조도 빼놓지 않았지요.
사실 그때만큼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했던 남편의 진가가 발휘되었던 적은 없었어요.
동네 아줌마들은 저보다 더 남편을 좋아했었구요, 여기저기 마당발로 통했던 남편이었으니
창업의 판촉활동은 따놓은 당상이었답니다.
분양받아 놓은 아파트가 한채 있었으나 입주를 한달 남겨 놓고 지방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금쪽 같은 새집을 남에게 계속 전세를 주고있어 그 집으로는 옮길수가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전세집을 구해야 했읍니다. 그래서 마침내 계약을 하고 이사날을 정하고 그 다음에는 영업장소를 알아보기 위해 이 계통의 선배님들을 찾아 다녔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읍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4년동안 세상 물정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 있었고 믿었던 선배는 우리를 이용하려고 했었지요. 자기들 욕심을 우리를 통해 채우려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우리의 절박한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앟고 자기들 손해 본것만 채우려 하였지요.
비록 우리는 금전적인 손해는 없었어도 귀중한 시간을 낭비 당했고, 이미 누구누구네 뭐한다더라하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거기에 맞추어 명함과 연락처를 미리 뿌려버린터라 모든것을 없던 일로 돌려놓기 위한 그 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풍기며, 시작부터 1차적 망신을 당해야 했지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속이 상했읍니다.
단박에 멋지게 컴백하려는 우리의 꿈은 멀리 멀리 날라가 버리고 초라한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자본액의 3분의 2를 대기로 한 그선배가 떠나버리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꿈에 그렸던 멋진 창업을 하기에는 턱도 않되는 금액이 들어있는 낡은 통장 한개가 전부였읍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남편을 닥달해 그 선배에게 피해보상해 달라는 소리도 못하겠고, 그 자존심에 창업자금중 조금만 빌려달라는 소리는 더더욱 안 나올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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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의 눈높이를 낮추기로 했읍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내에 위치한 휘황찬란한 사무실의 꿈을 접고, 어차피 시작하는거 차라리 맨아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오직 우리의 힘 만으로 우리의 꿈을 이루기로 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