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도 이인간 연락도 없이 핸드폰도 끄놓고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새벽 5시 40분에 조그만 목소리로 대문좀 열어달란다
자기 말론 속이 상해서 술을 너무 마셔서 도저히 운전을 할수가 없어서
한강시민공원에 차를 세워놓고 잤대나 어쩐대나...
그래도 21년 동안 살아온 부부?인데 싶어서
의무와 도리상 아스파라긴산이 듬뿍들어있는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서 속풀어서
출근을 시키고 멍하니 앉아서
저 인간하고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서 머리 굴리고 있을때 였다
전화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대서 시큰둥하게 받았더니
평소 조금 알고 지내던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오늘 날씨도 좋은데 포천 할머니 집 순두부 꽁보리밥 먹으러 갑시다"
그래서 기분도 그렇고 해서 "오 케이"하고는 부지런히 안바르던 화운데이숀도 바르고
커피색갈의 립스틱을 짙게바르고 수세미 같은 머리카락도
드라이(후까시)로 힘을 주고 밤색 구두도 반들반들 하게 닦아신고 구질구질하던 집을
나섰다
집 골목을 빠져나와 커브를 돌자 그 남자는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검은 승용차를 미끄러질듯이 들이대길래 나도 얼른 탔다
그랬더니 이남자 " 아니 왜 흰옷을 입었어? 남의 눈에 잘 띄게 시리.검은 걸로 입지...."
어쭈 지가 날 얼마나 안다고 반말이래? 하지만 좋은게 좋다고 봐주기로하고
"볼테면 보라지..."나도 뱃장을 부렸지
그리고 불광동을 지나 북한산 아랫길을 달리는데
세상에나...!!!!
그 파스텔색조의 물감을 산에다 뿌려놓은듯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언제 그랬냐는둣 집에서의 복잡한 생각들은 다 지위지고
그 위에는 가을의 수채화가 펼쳐졌고 내 마음은 열아홉살의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이 얼마만의 외출인가
하늘은 더 없이 파랐고 멀리 보이는 북한산 특유의 대머리 벗어진 암벽에
구름 한자락이 경이롭게 걸려있고 이 산을 수호하듯 받들고 있는
수목들의 단풍축제는 격앙된 내 마음을 평정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내 맘대로의 감격에 취해있을때
갑자기 차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이남자의 오른쪽으로 쓰러지면서 손목을 덥썩잡게 되었다
어머나 전기가 짜릿오면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
하지만 이남자 옆얼굴을 보니 실실 웃고 있더구만 .
알고보니 일부러 급제동으로 자동으로 자기옆으로 오게 만든 수작이었다
그래도 바깥 경치가 워낙 좋으니까 봐 주기로 했는데 옆을 지나던 덤프차의
운전기사가 까만 라이방(선글라스) 넘으로 우리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더니
"빵 빵"하며 경적소리를 얼마나 크게 내던지 기절초풍할번했다 (나쁜넘)
그렇게 한 참을 달려서 포천 할머니 순부두집에 도착
이남자와 마주앉아 꽁보리밥을 한 사발씩 비비시작
이남자 나의 눈치를 보며 참기름을 찍 짜서 넣어주며 이것저것 챙겨준다
나는 생리에 맞지않지만 (챙김에 대해서)처음엔 조금씩 먹는척 하다보니 어느새
한사발의 꽁보리밥을 거뜬히 비웠다. 얼마나 맛있던지...
사실 그날 가수 강은철씨도 그 할머니집에서 만났는데 아는척은 안했어도
설마 내 알리바이에 문제가 생기는것은 아닌지 몰라
그날따라 맑은 가을 하늘과 너무나 수려한 산과 들판을 지나서 돌아오는길은
더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애들걱정이 앞선다
그때가 오후 4시
그러나 이남자 내맘도 모르고 "우리 장흥에 들려서 커피나 한잔 때리고 갈까?"
그래서"너무 늦으면 안도ㅐ는데...."하면서 "되요 요요..."
로 바뀌어서 귀 얇기로 소문난 내가 예쓰 해 버렸다
그리고 장흥의 뒷길 예뫼골을 지나 거꾸로 내려오기시작했다
또 장흥의 험한 산세의 단풍은 절경을 이루었고 탄성을 자아내게했다
그러나 그아름다운 풍광 속에 모텔들이 장남감모형을 세워놓은듯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어느새 모텔을 구경만 하다가 보니 어느새 장흥 입구까지 와버렸다
솔직히 난 딴 뜻은 없었다니까....??!!
이번엔 커피를 먹을 차례
우린 가을 연인이 되어 우아하게 로드카페로 가서 이남자 나에게
손수 셀프로 고급 커피를 갖다 조더구먼
하긴 내가 언제 이런 대접 받아나 봤나
그리고 아이들 오기전에 올량으로 길을 재촉했다
또한 이남자 집앞 골목까지 와서 내려주며 윙크 한번 날려주더니
가버렸다
헐레벌떡 집에 오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부지런히 밥하고 남편 좋아하는 병어 졸이고 호박부치고 무우청으로 된장국을 끊이고 있을때
막내 아들 녀석이 들어선다
이녀석 나를 힐끔 쳐다보며 하는 말이 "어 엄마 오늘 따라 이쁘네 ~~에 어디갔다 왔어?"
여느때는 첫마디가 "엄마 밥쥐"가 인사였는데 왠지 가슴이 찔리네
하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야 임마 언제는 안 이뻤냐??"은근슬쩍 넘겼다
그리고 저녁 8시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남자
아뿔사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남자
꽁보리밥을 같이 먹던 바로 그 남자
이 남자가 바로 내 남편이었다네.....
난 그렇게 이 가을날 꽁보리밥 한 사발에 무너져 버렸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