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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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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 아니야~


BY 수련 2003-09-25

뜬금없이 우리집 남자가 보리밥이 먹고싶단다.

 

나도 가끔씩 보리밥이 먹고 싶을때가 있다.
중학교때인가보다.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은
거무티티한 보리밥을 싸 가지고 가기싫어
오빠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뜸도 덜 든 밥 솥 뚜껑을
열어 하얀 쌀이 위로 올라온 밥을 먼저 퍼 담았던
철 없던 시절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보리쌀을 푹 삶아서 촉촉하게 지으라길래
번거러웠지만 입이 까다로운 남자를 위하여
몇시간 불려 삶아서 물을 넉넉히 붓고 보리밥을 지었다.

마침 열무김치가 있어 무우생채도 만들고 호박잎을 찌고,
된장을 톡톡하게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맛있어 보였는지 "어, 먹음직 스럽네" 하면서
열무김치와 무우생채,된장을 넣고 비벼먹는다.

그런데, 밉상스런 남자, 말하는것 좀 보소!

 없는 실력을 짜내어서 열심히 상 차려 놓았는데,
"에이, 옛날에 옴마가 해주던 그 맛이 아이다.
 그때는 되게 맛있었는데..쯧 쯧..생 멸치 젓갈도
있으면 좋겄네"  경상도 바닷가도 아닌데
어이구~ 아예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라.

배고픈 그 시절에 무엇인들 맛이 없으랴. 가끔씩 남편은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반찬을 들먹이며 해달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내 딴에는 짧은 실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보지만 번번히 고개를 내 저었다.

나도 가끔씩 어릴때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이 생각나서
기억을 더듬으며 만들어 보지만 옛 맛이 아니다.
엄마는 제사가 워낙 많아 제사 뒤끝 음식들이 남아돌자
일명 '잡탕'을 끓여 며칠동안 밥상에 나오면
나는 돼지 꿀꿀이죽 같애서 숟가락도 대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종가집에 시집와서 일년에 7번
제사를 지내고나면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뒤끝에
'잡탕'을 만든다. 엄마의 맛에 비길수는 없지만 그래도 맛있다.
남은 튀김과 생선,나물에 신 김치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매운고추를 넣으면
얼큰한 '잡탕찌개'가 되는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인기만점이었다. 큰 냄비에 가득끓여 냄비채로 상위에
올려놓으면 다른 어떤 반찬도 필요없다.

몇 년을 살면서 한 톨로에서 그렇게 '잡탕'을 해 먹다보니
어느새 이웃이 우리집 제사가 어느 月에 있는지를 다들
알게 되었다. 우리집 아이들도 어릴때는 고개를
돌리더니 지금은 먹고남은것도 버리지 못하게한다.
얼마 전에 제대한 큰 애도 "우와! 잡탕이 얼마나 먹고싶었는데.."
저러다가 장가가서 마누라 한테 해달라 했다가
퇴박이나 안 맞을런지 모르겠다.

모든것이 세월따라 변해가도 엄마가 해주시던 묵은 그 맛은
변하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