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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13) *가을 타는 여자*


BY 쟈스민 2001-09-07

가을이 손짓한다.

그 유혹의 향기에 매료되어
어스름 저녁이 다 되도록 나는 집에 가지 못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 나를 그리도 붙들고 서 있는 건지
나는 오랜 시간동안
배회했다.

서른의 늦은 고개를 넘을 땐
누구나 그러했을까.....

하루쯤 훌훌 털고 일어나
나를 둘러싼 무거운 옷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문득 문득 일고 있음은
내가 지독히도 가을을 타는 여자임을 알게 한다.

쇼윈도우엔
하나 둘 이른 조명들이 켜지고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마네킹은
쭉 벋은 다리를 뽐내며 오늘도
자신의 의상이 빛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한번 보고 가세요.....
나를 향해 애닯은 목소리로 애원하는 듯 하다.
그 유혹이 너무 강하여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보다.

옷집엘 가면
언제부터인가 옷에 달린 꼬리표를 먼저 슬쩍 보고 마는
나를 느낀다.
갖고 있던 칼라 감각을 재빠르게 총동원하여
콕 찝어 낸 그 물건은.....
자그마치 .....
그냥 돌아서 나오고 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아줌마였다.

못내 아쉬운 발걸음은 참으로 무겁기만 했다.
꿩 대신 닭이라던가
그래도 변신하고 픈 마음은 나를 서성임에서
놓여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나만이 아는 아지트로 갔다.
카키톤의 엷은 니트 한장과, 카멜 베이지의 울바지
한장으로 나의 가을은 충분히 넘쳐났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가격이 나를 사로잡는다.

브라운 톤으로 염색한 굵은 웨이브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는 매장 직원의 말이
빈말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다.
오렌지 빛 헤어핀하나 머리에 꽂아 본다.

거울속의 나는 약간의 배가 나왔고
작년보다는 조금 늘어 있는 나이살을
하고 있는 허리를 느낄 수 있었으나
긴 다리를 아직껏 하고 있었고
아직은 감출수 있을 만큼의 잔주름이 간간이 눈에 띄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긴 했다.

살다가 가끔씩은
아주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만족으로 행복해하고 싶을 때가 있다.
스스로 우아해 지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그럴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바라다 보는
즐거움은 찾는 사람에게만 오는 듯 하다.

이른 아침에 새롭게 변신한 모습으로
나는 하루의 창을 열었다.
가을이 손님처럼 문밖에 와 있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자잘한 즐거움들이 밀리는 차들의 무리에
끼어 있는 나를 화낼 수 없게 하고
기꺼이 또 한대의 차에 양보할 수 있게 한다.

너무 그 무리들의 행렬이 길어
노련한 노하우를 요구하는 아침 출근길은
겨우 지각을 면하게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서둘러 나와야지
마음속 작은 다짐을 차곡히 메모해 두고
나는 또 컴 앞에 앉아 본다.

나를 기다리는 일들이 거기 놓여 있고
내가 기다리는 일들이 또 어디선가 기지개를
펴겠거니.....

오늘 아침의 나는
누구보다도 한 잔의 커피가 어울리는
가을을 타는
여자가 된다.

많이 사랑해야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
나는 그런 시간이 좋아.....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
이 세상에서 어쩌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지도 몰라.....

지독한 계절병에 잘듣는 약은
나만이 알아..... 나는 나를 잘 알아.....
그래
그래야해
그래야만 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줄기가
나를 향해 웃고 서 있다.

그래도
난 어쩔 수 없어.....
그런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