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충남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집에 갔을때
그 곳의 푸른 소나무와 붉은 진흙이 장관이었다
아람드리 밀집한 소나무와 기름진 찰흙을 보며 어느새
아련한 추억더미 저편 작은언니와 마주섰다
아마도 37-38년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내 나이 여덟살 작은 언니는 열한살 그리고 동생들 동생들...
아버진 탄광에 일을 나가셨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집안일은 언니들과 나의 차지였다
또한 동생들 까지 돌봐야 했다
그 중 작은언니는 큰언니보다 일을 잘해서 집안 살림을 도맡다시피했다
작은언니는 우물물도 양동이로 머리에 이고 그릇그릇마다 물을 가득가득
채워놓고(그래서 키가 안컸다고 불만임)
그 많은 식구들의 빨래도 커다란 대야에 가득담아서 이고
살골짜기 계곡에 가서 하루종일 빨아서 양재물에 삶아 뽀이얗게 말려서
저녁에야 돌아오곤 했다
뿐만아니라 늦은 가을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언니는 나무하러 산에 올라간다
유독이쁘고 키가 작은 작은 언니는 억척스럽도록 갈비(소나무낙엽:강원도 사투리)를
갈쿠리로 박박긁어모아 다져서 직사각형의 나무 둥치를 잘 만든다
그리고 발로 꼭꼭 밟아서 새끼줄로 묶어 세운다
물론 내 나무둥치는 베게 만하게 만들어준다
언니는 자기키보다 큰 나무둥치를 산의 경사진곳에 세우고는
나더러 앞끝을 올려달래서 자기앞발로 살짝차올리며 머리에 인다
그 기술이 얼마나 절묘한지 혀를 내 두를 정도이다
지금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 쪼끄만 여자아이가 그렇게 되기까진 얼마나 많은시행착오로 넘어지고 자빠졌는지....
그렇게 작은 언니가 아버지몫까지 거의 다 하다시피 했다
작은언니가 워낙 깔금한데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웠기도 했다
엄마도 큰언니가 일을하면 마음에 안들어도 작은 언니만은 안심을 했다
하루는 내가 설겆이를 해놓고 칭찬좀 받아볼까하고 있을때
느닷없이 부엌에서 마당으로 솥단지며 양재기와 냄비가 던져졌고
작은 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릇에 밥알이 그대로 묻어있고 땟국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볏짚과 양잿물과 진흙을 퍼오더니 우물가에 반나절은 앉아서
빡빡무지르고 닦더니 눈이 부시게 반짝반짝하게 닦아놓는다
그날 저녁 작은언니는 또 칭찬을 들었고 난 여전히 디뒈발이란 별명이 떠나질 못했다
그리고 그시절 아니 강원도 산골에는 부엌아궁이를 돌로 형태를 만들고 부뚜막은
진흙과 볏짚을 섞어 개어서 만들어서 솥을 걸어서 사용했다
따라서 나무를 땠기때문에 언제나 부뚜막엔 그을림이 시꺼멓게 묻어있었다
그러면 주기적으로 진흙을 묽게 개어서 발라주곤 했었다
이것도한 작은 언니의 몫이었다
하루는 부뚜막에 바를 흙을 파러 건너말 야산에 갔었다
이 흙은 입자가 고운 찰흙이라야 하기때문에 우리만 알고 있는 곳으로 언니랑 가서
파기시작했다
그리고 함석으로 만든 다라에 흙을 퍼담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왓는지 커다란 벌이 내 얼굴을 쏜것이었다
난 일도 못하는것이 언니가 흙을 파는것만 보고 섰다가 정신이 아뜩해져서
그대로 넘어진것이다
언니는 내 동생 죽는다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호미와 삽을 내 팽개치고 나를 업고
집으로 달려왔고 난 지급도 그렇지만 그때도 엄살이 말도 못했다
그때 난 꼭 죽는줄 알았었다
왜냐면 벌 쏘인 자리가 금방 퉁퉁 부어올라서 앞이 안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엄만 태연하게 벌쏘인 자리를 입으로 몇번 빨아서 뱉어내더니
된장을 한 주걱 철퍼덕 발라서 호박잎으로 싸매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난 며칠동안 된장에 뜸질을 하자 신기하게도 붓기가 빠지고 살아났다
그 와중에도 언닌 솔가지를 꺾어다가 붓을 만들어서 찰흙을 풀어서
시꺼멓던 부뚜막을 살결처럼 뽀얗게 칠해놓고
까만 가마솥 뚜껑을 반들반들하게 닦고 있었다
홍성에서 소나무와 빨간 진흙을 보니 꼭 작은 언니가 생각나서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지금 까지 아들도 없는 딸여덟인 우리집에 아들 노릇을 해주는 장한 딸이다
어려서 부터 고생만 한 언니
어느새 지천명인 나이오십의 중년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또 가을이 왔다
난 가을이 오면 작은 언니가 나무 해오던 생각
우물속으로 빠질듯이(키가작아서)두레박질해서 양철물동이에 물을 찰랑대며이고오던 모습
푸른 솔잎꺾어다 부뚜막에 흙칠하던 조그맣고 하얀피부와 빨간 입술에
까만 단발머리 작은 언니의 모습이 슬프게 웃고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눈물속에서 굴절된
아련한 세월을 또 집어 삼킨다 . 이 가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