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3

나의 창업일지 4.


BY 짱아찌 2003-09-20

드디어 시험날 ,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년도에 비해 한달 정도 늦게 시험일이 잡힌 탓에 날씨도 제법 쌀쌀한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가뜩이나 긴장한 내마음속에 더욱 더 깊은 얼룩이 지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남편과 아이까지, 지난 밤에 온 집안을 설쳐대며, 이거 챙겨라 저거 챙겨라 빠진 것은 없는지 잘 확인해라 하며 잔소리를 해대는 남편덕에 더할 나위없이 완벽히 꾸려진 내 가방을 챙겨들고 시험장에 도착하였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몇개월을 고통분담을 같이 하며 지내온,어쩌면 오늘 아니면 다시는 못 볼 나의 학문적(?)동지들도 와 있어 준비해간 커피와 간식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수다를떨고 있자니, 으이고~~  못 말리는 나의 남편님. 시험 볼 교실과 좌석까지 확인해서 방석까지 깔아주는 초특급 매너를 보여주며 빨리 앉아서 한 글자라도 더 보라고 말없는 성화를 보내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질까 걱정인가?

"알았어, 그럼 집에가서 밥먹고 있다가 끝날때쯤해서 와, 시험 잘 볼테니까" 하며 조금은 자신있는 얼굴로 남편과 아이를 밖으로 내 보냈다. 다만 몇시간이라도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명 집에도 안가고 시험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뻔할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는 잠시후 시험감독관 등장. 앞쪽 칠판 위에는 커다란 원형 시계가 걸려있었다.

시험은 정각에 시작되었다.

난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때 그시간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을 알고 있지 못하다.시험준비기간중에 나는  시험시간이 엄청 길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오래 앉아 있는 연습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연습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생겼다. 여기 저기서 궁시렁하는 소리도 들려왔고 가끔은 연필굴리는 소리도 들려 왔다. 초조함이 밀려오고 여기서 그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할수가 없었다. 지나온 시간이, 식구들 고생한 것이, 또 그 세월동안 닳아버린 내 엉덩이 살이 아까웠다.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 했다.

 

1교시가 끝나고 2교시가 끝났다.

마침내 나의 기나 긴 대 장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나와봐야 아는 것이고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순간 난 속으로 다짐했다.

"내  이놈의 책 다시는 안 본다. 또 누군가 나한테 자격증의자소리만 해봐라. 그놈의 인간 가만 안 놔둔다."

시험이 끝난 후, 난 당분간 시험은 생각도 안하려 했다, 정답도 나중에 맞추어 보려고 했다. 아니, 어차피  합격자 발표를 나중에 정식으로 할 것이니 아예 합격자 발표날까지 신경 안쓰고 덮어두려 했었는데......

 하지만 현실은?

우리 남편, 어느새 어디서 답안지를 구해왔는지 가나다라마(정답표시방법이 가나다라마 오지선다형이다.) 빼곡히 적혀있는 종이 한장 내 밀며 빨랑 챙겨온 문제지 내어 놓으란다.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각 학원에서 급하게 만들어낸 가답안지를 얻어 온 것이다.

그것도 오지랖 넓게 교실문 앞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말이다.

문제지에 내가 기록한 답이 표시되어 있으니 채점을 해보면 당락이 결정날것이라나?

"싫어! 이따가 밤중에 나혼자 할거야,그전에는 손도 대지마, 알았지?"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궁금해서 죽을라 하는 남편이 문제지가 들어있는 내 가방에는 손도 못대게 하고 그날 점심과 저녁은 외식으로 해결했다.

 

그날 밤,

나는 절망과 후회와 억울함으로 밤을 꼴딱 세워야 했다. 베게밑에는 눈물에 흠뻑 젖은 수건한장을 놓고서 말이다. 시험은 1차와2차로 나뉘는데,  채점결과 1차시험은 평균점수60점에서 2점이 모자르고 2차시험은 평균점수를 한참뛰어 넘었다. 즉 1차는 불합격이고 2차는 합격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1차를 붙어야 2차를 인정해주고,1차 합격시 다음해에는 2차만 다시 보면 되는데 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것이다. 1차가 불합격처리되면 2차는 아무리 시험을 잘 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것이다. 이대로라면 몽땅 도로아미타불이다.

밤새 훌쩍거리는 나를 보고 남편도 사태를 짐작했는지 그저 " 잠이나 푹자라" 하고서는 자기도 짐짓 자는 척한다.

다음날, 남편은 아이를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기분풀이나 하자며 산으로 향했다.

나는 순순히 남편을 따라 다니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척했다. 속으로는 많이 실망했을텐데, 그래도 티 안내고 열심히 내 기분 풀어주려 애쓰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런 남편앞에서 시험 떨어졌다고 나 혼자 울고 불고 할수는 없는 일 아닌가....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하루를 땡땡이 치는 것에 신나하며 조잘조잘 댄다.

남편과 나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다. 밥맛은 없었지만  남편이 골라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었고, 각자의 생각에 잠겨 침묵중일때는 억지로 깨려하지 않고  그저 이해의 미소만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도 날려버렸으며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서서히 우리는 그렇게 충격속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노력의 댓가를 받았다.

 좋은것은 제일 나중에 온다고 그 누가 그랬든가,

며칠뒤, 정식 답안이 발표되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두근두근대며 다시 답안을 확인했다.

상황은 대 역전이었다. 1차 시험문제에서 오답이 나와 '모두정답' 처리된것이 4문제이상이었던것이다.  나는 4문제만 더 맞으면 합격이었는데 4문제이상이 정답처리되었으니 당당하게 합격선안에 들은것이다. 희망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복병이 있었다.

혹시 정답을 표시할때 한 칸씩 밀려 쓴것은 아닐까? 시험전에 그 문제에 대해 너무 주의를 많이 받은탓에 노이로제에 걸린것 같았다. 에이~~설마?

마침내 12월5일, 합격자 발표날.

가슴졸이며 기다려온 이날. 시계바늘이 12월5일 첫 시각을 알리지마자 남편은 전화기를 집어들었고 나는 컴앞에 앉아  합격자명단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이 조금 빨랐다.

"야 됐어 너는 합격이야"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믿을수가 없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이 더 빨라졌다.

수험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축하합니다라는 메세지와 함께 평균점수가 떠올랐다.

잠시 뒤,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쌓여왔던 긴장이 풀리면서 조바심쳤던 지난 시간이 떠오르고 시험당일날 밤 떨어진줄알고 속상해했던 그 마음고생이 너무너무 억울해서 나는 펑펑 울어버렸다.

"야,우리 와이프 대단하네. 진짜로 한번에 붙었네"

남편은 장난끼 비슷한 이 한마디로 그 모든 감정을 삭여내며 내 어께에 한 손을 얹어주었다.

난 느낄수 있었다. 그때 남편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는것을......그리고는 뒤돌아서 나가며 작은 한숨을 내 뱉었다는 것을......

 

 

 

 

 

지금은 새벽3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이부분만은 꼭 아컴에 올려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컴앞에 앉아있읍니다.

다가오는 21일 시험을 앞두고 있는 여러 분들에게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기와 격려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어려움속에서 저와 같았던 목표를 향해오셨던 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부디 좋은결과 있으시기를 기원하고 시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 분들은 아래주소로 연락주세요. 2jaja@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