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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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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리 운전자 -----


BY 카이 2003-09-17

그저께 새벽 4시 땅동~~~~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낯선 남자가 서있었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술 취한 남편의 차를 서울까지 몰고가서 술 마시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차를 끌고 우리집까지 찾아온 대리 운전자.

그는 내게 요금 12만원을 요구했고 돈이 없다하자 전화번호를 남기고 차를 끌고 갔다. 그날 오후 4시쯤 또 띵동~~~ 건빵의 학습지 선생님인가 했는데 검은 선글라스를 낀 새벽의 그 사람.

내게 돈은 아직 없는데, 남편에게 얘기를 하고 남편 스스로 찾아오게 할 요량이었는데. 또 이렇게 걸음을 하였으니 얼마나 미안한가. 헛걸음을 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하자 그는 지금 출근하는 길이라 받아가려고 했었다며 오히려 미안한 듯 가버렸다.

남편이 내쳐 자고 있으니  말할 틈이 없다. 그런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에게만 차에 관해서 말씀드렸을 뿐.

어제 오후 7시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또 그 사람. 남편이 일어나면 스스로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케 하겠다는 것은 나의 생각일 뿐. 그 사람은 또 회사와의 관계가 있어서 그럴 수는 없는 모양인가 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나오시는 동안 그에게 귀찮게 매달리는(우리 뿌뿌는 손님을 보면 짖지 않고 반가워 죽는다)  뿌뿌. 애써 잡으려고 하자 강아지를 좋아한다며 놔두시란다. 현관에 세워둔 채나마 쥬스 한 잔을 건네자 고맙다며  꿀꺽 단숨에 마셨다.

어머니는 요금을 건네며 어찌된 영문인지 요금은 정확한 건지 따져물을 태세이신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다소 방어적인 태도로 사실 회사에서는 20만원을 부과하라고 했지만 그냥 12만 원만 받는 거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시흥에서 서울까지 오가고, 중간에 대기시간도 있었다 하니 적은 요금도 많은 요금도 아닌 듯 싶다.

어머니, "내 따져 물으려는 것은 아니었소. 세상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한탄하시 듯 말씀하시고 그를 보내셨다. 그는 공손히 인사하고 갔다.

외모만 보자면 얼핏 보기에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야밤과 새벽에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하노라면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그에 따라 성격은 얼마나 거칠어지겠는가. 술취한 인간들에게 시달리며 잠 못 자고 일한 돈 받으려고 몇 번씩 찾아다녀냐 하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그런대도 그는 나의 미안한 마음을 읽어주었다.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하물며 그런 사람도 읽어주는 나의 마음을 남편은 왜 읽지 못하는가. 하기사 자기를 낳아주고 이혼한 자식 뒷수발을 10년 간이나 해오신 어머니 마음도 못 읽는 사람이니 정녕 한 겁 막힌 생각 열리기가 어려운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