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정월대보름날을 헤아리며 오곡밥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아이들은 발렌타인 데이라며 며칠전부터 초콜릿을 사다가 냉장고에 모셔두고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정원대보름날이 익숙한 세대에 가까운 나이를 먹고 있었는지
나는 어느새 그쪽이 훨씬 더 친숙하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로 사는 이들끼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은
굳이 어떤 날로 하루를 정하기 보다는
늘 마주 대하는 생활속의 습관처럼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되었으면 참 좋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생각 없이 출근하여 보니 사무실 언니는 책상마다 초콜릿을 나눠 주고 있다.
사실 마음은 있으나 좀 머쓱할 것 같아서 애써 참고 있었다.
언니의 처분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민첩한 언니의 행동에서 굼뜬 내 모습을 발견해 본다.
우리네의 명절도 아니고,
솔직히 어디서 부터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움직임이 그저 부자연스러워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괜히 미안함이 인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서 성급한 봄을 기다리니
포근한 바람이 살랑살랑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런날에 달콤한 초콜릿 한 알씩 나누어 먹으며
대보름날 부름을 한 알씩 깨물며 정을 나누는 하루
오늘은 왠지 다른날보다 하루가 쉬이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이들에게도 부부간의 돈독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 하나를 준비해 본다.
한알 한알에 정스런 마음을 듬뿍 담아서 건네고 싶은 그런 나를 보며
잠시 입가에 웃음이 머문다.
일년에 몇날 쯤은 그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픈 욕심이 슬그머니 이는 걸 보면
무뚝뚝 하기만 한 나도 어쩔수 없는 여자인가보다.
아빠에게 전달된 선물로 인하여
한때 달콤한 눈웃음으로 온가족이 사랑이라는 테두리에 잠시 함께 머물수 있다면
우리에겐 어느날 보다 소중한 하루가 될 것이다.
봄을 닮은 빛깔로 햇살이 정말 눈부시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이 아빠의 텁텁한 음성...
나이답지 않은 개구장이 같은 웃음소리...
하루 일과를 진행하면서도
연신 창밖으로 그런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 보면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보다는 서서히 오래도록
서로를 그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은 오곡밥에 갖가지 나물을 색스럽게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정월대보름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며 먹고 싶은데 ...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이 잘 날런지 모르겠다.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 이제는 섣불리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 ...
어쩌면 이제는 정으로 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는데
삶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음을 문득 문득 느끼기도 하면서
조금은 후회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테지 ...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으로 채워진 풍요로운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 같다.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자존심의 문턱을 낮추어 두고
부드럽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가진이가 되고프다.
봄이 오면...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을
눈부신 봄햇살 속에 당당히 드러내며 어깨를 활짝 펴고 새롭게 걸어야지 ...
정으로 사는 일이 조금은 서글퍼 보인다면
우리만의 색깔로 사랑을 채색해 가는 일에도 부지런을 떨어야 될 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