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봄비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 도사리 배추 천원 /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 앞 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 꽃 피겠습니다
몇 달 전 모 식품회사에 시창작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몇 달 동안 부지런히 걸음하였다. 시 쓰고픈 마음 굴뚝 같은데 시는 어렵기만 하고 선생님의 혹독한 비평은 때로 인격적인 모독으로까지 들리는 것이었다. 내가 보아도 한심한 글인데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시는 고사하고 글 같지도 않은 글을 평해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몇 달 동안 매일 걸음해도 말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 곳에 걸음하지 않기로 하였다. 건방지게 시를 쓰겠다고 나서기 전에 좀더 많은 시를 읽고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나는 시란 어느날 영감을 받아서 일필휘지로 단숨에 써내려가는 것인 줄로 알았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때로 퇴고는 수백 번 반복되고, 반복되어야 한다고 한다. 시의 생명을 좌우하는 백척간두에 매달린 듯한 절박한 심정으로 시어 하나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도도히 흐르는 개척 정신.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시의 정신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 도도히 흘러서 그 강물에 영혼을 적신 자가 시를 쓴다고 생각해왔다. 마치 무녀가 접신(接神)하듯 시신(詩神)과의 접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멍청하도록 신비주의적인가.
나의 아이디 카이는 열릴 개(開)의 중국어 발음이다. 열리고 싶다. 몇 억 겁으로 겹겹이 쌓여있는, 나를 향해 닫혀있는 의미의 세계를 향해. 시신(詩神)을 향해 열리고 싶다.
시를 쓰는 일이 설사 내 생각처럼 신비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노력 없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무녀도 명산을 찾아 몇 백일씩 금식과 금욕의 치성을 드리지 않는가.
김해화 시인의 <아내의 봄비>를 읽었다. 부끄러웠다. 남편과 함께 안산 도매시장에 종종 간다. 도매시장 밖 담벼락에 좌판을 벌여놓은 할머니 몇 분이 있다. 한 번 물건 값을 물어보니 담 너머 도매시장보다 오백원 천원 비싸다. 나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내 마음, 이리 가난하니 나는 시를 쓰려면 아직 멀었다. 다음 생애에나 쓸 수 있을까.
시의 맨 마지막 구절이 화룡점정처럼 또렷하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