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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이제 편히 쉬세요, 여자의 짐을 벗고...


BY 둘공이 2003-09-05

고모, 먼저 죄송해요.

외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모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했네요.

저번달 잠깐 한국에 갔을때 뵈었던 그 힘들어 하시면서도 웃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합니다.

 

그래요, 이제 이세상 사람 아니니까, 어쩌면 이승의 모든걸 초월할 수 있겠죠.

솔직히 고모와는 여자로서 철들면서 부터, 그리고 엄마의 시댁식구로 인정하면서 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죠.

어릴땐 고모집에 가서 사촌들과 밤새워 놀기도 했었는데, 울 엄마를 힘들게 한 시댁식구들이 밉고 미워서 결혼하고 지금껏 왕래 한번 없었죠.

 

고모의 이쁜 딸 고은이 시집 보내시려고 지금껏 이승의 삶을 지탱 하셨었나요...

결혼 일주일쯤 지났나요..

그래도 편히 가셨다는 말에 위로 삼아도 될까요..

 

울 아빠는 고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싫으셔서 가지 않으셨대요.

8남매집 큰 아들이자, 큰 오빠로 고모에게 별로 좋은 기억은 없을테지만 아빠는 너무너무 맘이 아프신 거에요.

고모 마지막 가시던날도 진료 가신다며 사라지셨다는 고모부 미워서, 아빠는 지금도 화가 나 계신 거에요..

 

고모도, 엄마도, 그리고 저도, 그리고 할머니도 여자이기 때문에 서로 친해지지 못했던, 이 무겁고 무거운 여자로서의 짐을 벗어버리고 나면, 언젠가 다시 만나면, 어릴적 그 좋았던 고모의 모습으로, 그리고 한없이 좋기만 했던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리고 철없던 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손 잡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시집와서 그 집의 귀신이 되야 한다는 한가지 신념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고 나면, 나중에 세상을 뜰때에도 그 집의 귀신이 되고 싶을까요..

 

어쩌면 자유롭고 싶으셔서 화장을 선택 하셨을까요..

 

참 슬퍼요.

 

먼저간 제 동생, 할머니 만나면 꼭 안부 전해 주세요.

 

그리고 저도 여자로서의, 엄마로서의, 아내로서의, 딸로서의 짐에서 벗어나는날, 이승에서 하지 못했던 긴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에 다시 만나요.

 

그때 왜그랬어요? 좀 잘하지... 이런 원망도 웃으면서 털어놓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