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가진것 없이 결혼을 하고 맞벌이 십여년 후 서울 외곽지 한귀퉁이에 아파트
를 마련한 신혼시절 우리는 너무도 기뻤었다.
그전에 전세를 잠시 살았던 집주인은 벽에 못도 함부로 박지 못하게 했었고, 물도 함부로
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내집을 마련한 우리는 17평이라는
숫자는 당시 우리에게 너무나 큰 운동장을 선물 받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이십여년을 살면서 큰아이 이어 둘째아이도 낳아서도 살았고, 두아들놈 초중고를 모두 그 집에서 마쳤으며. 작은 공간이었지만 맏이라면 누구나 겪는 제사나 생신같은
큰일들을 치뤄냈다.
그곳은 여름이면 매오분 십분마다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였는데 그 순간은 TV도 잘 안들려서 힘들었지만 그 정도는 서민이 사는 곳이라 하는 체념때문이었는지 우리는 그다지 고통을
느끼지 못한며 살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신선한 공기와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었고, 아침일찍 남편과 산 정상까지 이십여분 정도 산책을 하면서 촉촉한 땀과 함께 상쾌함을 한껏 맛볼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가을이면 은행잎과 단풍잎이 낙엽 져서 그 분위기가 너무도 고즈넉해서 난 아이들을 모델 삼아 셧터를 눌르곤 했었는데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성글성글한 잇속을 속이지 않고 크게 웃는 두 아들 녀석들 사이로 보이는 배경의 분위기가 그대로 가슴속에 전해진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함박눈이 쏟아져서 온 동네가 눈속에 파 묻히면 꼬마녀석들은 아우성을 치듯 소리지르며 눈싸움을 했고 애어른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와 하하호호 웃으며 놀고,
한쪽에선 눈사람을 만들어 숯을 구해다 송승헌 버금가는 눈썹을 붙이고, 자기의 털모자를
씌워주며 한손엔 빗자루를 쥐여주고 한손은 꼭 잡고 또 사진 한컷을 찍곤 했다. 그러다
봄이되면 노란 개나리가 터지고 목련과 흰벚꽃이 피어나면 우리의 감성들은 그냥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그동네 주민들은 여의도나 특별한 곳으로 봄꽃 축제를 구경가질 않았다.
그곳은 오층짜리 아파트와 이층짜리 연립으로 구성된 단지 였는데 특히 연립쪽은 더욱 꽃의 향연이 무르익도록 좋아보였으며 아름답게 꾸민 집도 꽤 있었다.
내가 살던 오층짜리 주공아파트는 도둑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은듯 여름이면 대문을 서로 열어놓고 살다시피 하였는데, 오늘 같이 비라도 촉촉히 내리는 날이면 누구라고 할것 없이
'아무개야, 이층으로 올라 와라, 부침개 해 먹자'라고 소리라도 칠라 치면 부르지 않은
누구누구 아줌마들이 모두 몰려 와서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하고, 속 상한 일이 생기면
조금 연배되시는 선배들이 따스한 충고도 해 주고 어느땐 같이 욕도 해 줘서 속 상한이의
마음을 풀어주는 장이 되기도 했다.
그 골목에선 겨울마다 김장 품앗이가 성행했는데 그것은 품앗이라기보다 김치축제주간이나
다름없었다. 겉절이에다 생선 한토막, 그리고 돼지고기 수육 푸짐히 삶아서 햇 서더리콩을
듬뿍 넣은 햅쌀밥에다 겉절이를 먹었던 그 인심들이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지금이나 그때나 서울은 너나할것 없이 돈바람을 부축이는 재건축이 성행한다.
어김없이 그마을에도 이십년이 넘은 노쇄한 아파트라고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고,
온 동네는 술렁거리면서 조용하고 아늑했던 정취는 점차 소리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몇년동안 이웃은 밤새 새로운 이웃으로 변하기도 했고, 빈채로 있기도 하다 결국
모두 떠날때를 맞게 되면서 아쉬운 작별들을 했다.
그들은 그 이십여년동안 살던곳에서 생노병사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이웃사촌이었는데,
현대화바람이 휩쓸고 돈바람이 불고나선, 서로 낯설고 물설은 곳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래 즐거이 살던곳, 화곡동, 그곳은 나의 살던 고향이다.
그곳이 그리워서 얼마전 친구가 사는 재건축된 아파트를 가보았다가,너무나 낯설어서
어디가 내가 살던 동인지를 구별도 못하겠고, 마천루처럼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에 가려
햋빛조차 땅에 쉽게 닿을 수 조차 없을 같아 보여서 예전 이맘때면 빨간 햇고추를 사다가 넓게 펴서 말렸던 그런 그림조차 연상을 할수 없었다.
아름답고 우람했던 나무들은 온데간데 없고 얼굴만 부딪치면 다 알았던 그들도 없었으며
모두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근채, 온 마을은 냉정한 기류라도 흐르듯 나는 마치 친정을 잃은 새댁같은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사는 지금 이곳도 재건축한 아파트라 온갖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여기 사는 모든 주민들도 아까 느꼈던 그런 마음이겠지만, 출입문조차 암호를 눌러야만
열리는 새시대형 아파트이어서인지 엘리베이터 속에도 맘놓고 인사를 나누기가 낯설어서
살수록 나의 옛 고향이 그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