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적 유년시절은 강원도 평창 진부에서 보냈다
그것도 우리집은 딸이 많았고 그 중에 난 셋째다
이 정도 이고 보면 하루 세끼도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우리집은 특히 더 그랬다.
그러나 다 먹고 살기 마련이라고 ....
이른 봄이면 큰언니가 우리동생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한껏 물먹은 어린 소나무 순을 뚝꺾어서 껍질을 벗긴다음
입술로 훝으면 송진맛과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리고 산밑 저 언저리에 찔레순과 싱아가 어느새 나와있다
찔레순도 입사귀는 뜯어내고 얇은 껍질을 벗겨내고 씹으면
떨떠름함과 약간의 단맛의 향기가 나고
시큼한 싱아도 질겅질겅 십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또한 오대천의 얼었던 물이 풀리면
또 큰언니가 개구리를 잡아다가 뒷다리만 삶아서 우리에게 먹이기도 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들의 영양의 보고였다.
하지만 여름이면 먹을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찰옥수수와 감자를 가마솥에 가득 삶아서 싸리 바구니에
담아 장독위에 올려 놓으면 새앙쥐 들락거리듯 우리 여덟아이들의
손길이 서너번 왔다가면 금새 없어진다
그럭 저럭 가을이 오게 되면 우리들은 저마다 망태기와 광주리를 둘러매고
뒷산으로 도토리 줏으러 올라간다
뒷산엔 깜부기며 찔레 열매가 붉게 물들어있고
산 열매들이 여기저기널려있다
우린 찔레열매를 한 움큼씩 따서 입에 넣고 씹으면 씨만 가득하다
그래도 단맛만 목으로 넘기고 씨앗은 퉤퉤 뱉으면서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몰랐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도토리를 줏다보면 큰언니는 망태기에서
자주빛의 벌레같이 생긴 열매를 내놓는다
조금전 건너편넝쿨에서 따온 "으름"이라는 것이었는데
바로 한국의 바나나라일컫는 것이었다
큰언니가 으름을 반으로 가르자 그 속살은 뽀얀것이
까만 씨앗이 가득하다.그리고 입안에 넣으니 정말 얼마나 맛있는지
우린 그때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열매는 처음으로 먹었다
그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말로 표현이 안되었다
그리고 미끌끌한 까만 씨앗들은 파아란 가을 하늘에
"투`--우"하고 뱉으며 우린 마냥 행복했었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가을은 풍성했다
그리고 어머닌 우리가 줏어온 도토리를 까서 이빨빠진 항아리에
울궈놓으신다
그렇게 강원도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고 유난히 길고 춥다
어느새 찬 바람불고 온 산과 강이 얼어붙고 사람들 조차
바깥 출입이 어려울때
어머닌 굼블을 때며 가마솥에다 물에 울궤낸 도토리를 팥과 함ㄱ께 푹 삶으신다
우린 따뜻한 아랫목에 국방색 담요속에 발을 넣고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심심해 하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김이 폴폴나는 도토리 삶은 것을 커다란 바가지에 퍼서
식구들 수대로 수저 열가락을 꼽아서 방 한가은데 내려 놓는다
그리고 하얀 당원 몇알을 넣고 식칼의 손잡이로 콕콕 빻는다
푹 삶아진 도토리와 팥은 어우러져서 찐빵의 앙꼬(소)처럼 되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우----달려들어 숟가락 부딫치며 입에 퍼 넣다보면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그 맛이란 도토리의 떨떠름한 맛과 팥의 고소함과 당원의 달달한 맛이 어찌나
절묘한지 ...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그것을 "꿀밤"이라고 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 내가 어렸을땐 그랬었다
그렇게 도토리 아니 꿀밤은 강원도의 긴 겨울과 기나긴 밤의 먹거리이며 간식이었다
그리고 안방의 호롱불 밑에서 아버지와 어머닌
엑스란 내복을 벗어 이를 잡고
사랑 방에선 동네 삼촌들이 모여 꿀밤에 갓김치를 먹으면서
동양화(화투)공부를 하면서 욕을 섞은 웃음 소리가 싸릿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면 마루밑의 누렁이도 덩달아 컹컹 짖어댄다
밤하늘엔 흰눈이 춤을 추며 초가 지붕과 장독위에
그리고 봉당과 마당옆의 탱자나무위로
싸르르 싸르르 쌓이며 밤은 깊어간다
40년이 지난 중년이 된 지금도 잊을수 없는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아릿한 향수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