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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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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같은 동생에게


BY 주인주 2000-08-30

TO : 윤주에게
벌써 우리들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었구나
눈깜박 할사이에. . .

너,나 모두 장성한 아이를 둔 정말 아줌마들이지,
그런데 아직도 너를 생각하면, 긴머리 치렁치렁 날리며
자전거를타던 소녀적 그림만 떠오르니,우린 아직도 소녀들인가?
네가 갑짜기 먼곳으로떠나,2년이라는 세월을 못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하다.

늘 만나면 반가워서 밤새 수다를 떨다가도
항상 네가 갖고있는 피해의식으로 (나는 장녀이기에 충분한 정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고로 본인은 밀려난 피해자였다고)
토라지고,어린아이들을 글고 다시 안볼것같이 집으로
돌아오곤했지

연년생인 우린, 엄격하게 열한달 차이로 젖도 못 얻어먹고,
아빠에겐 딸이라는 이유로 당신이 바람필명분으로삼아
난 나중에안 사실이지만 ,나랑 같은 지붕에 살면서도 차별을
받았지
나두 몰랐어.
네가 집에서 설겆이며,엄마와빨래도 하고 ,내교복이랑,운동화를
빨아주었다는걸, 정말 몰랐단다.언니는
정말 바보였어,나는
그런데 , 그 아빠를 나는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적대감으로
용서할수 없어,지금껏도
미국에서 그렇게 고생해도,모른척 하는 냉정한 난데
너는 그 아버지를 붙잡고 어릴때 왜 나를 구박했냐며,대성통곡을
하더니 ,그아빠를 용서하고,잘하고 있쟎니..
난 이해가 될것 같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될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너는 잘살아야 되는데,

아빠가 이민을 떠난다며,호적을 빼라고 했을때,그 어린21살의
나이에,나역시 어렸지만,결혼의 의미도 없이 두달만 살고 이혼한다며 한 막가파식 결혼으로
이날 까지, 고생하는 너를 생각하면,
난 아버지를 용서할수가 없단다.

그래도 큰자식 공들여 사관학교를 보낸 너의 장함에 경의를
표하며, 너의 고생이 얼른 끝내길 바란단다,
이제 큰마음으로 모든걸 잊고 먼 타국에서
조리사자격증을 따둔덕분에 조리장이 되어 돈벌러 떠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네가 부대찌게 요리법을 보내달라고 하기에 금방
인터넷에서 정보를 발취 (글씨가 적어 다시쳐서) 지금 Fax로
보내고난, 언니인 나는
그동안 네에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렇게 너 없는 세상에
고백하고 있다.

고집이 세어, 어릴적 너는 매를 맞을때마다,온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치며 도망다니는 통에 맞지도 않으면서 소문만 낫었다는 너!
평생 애정없이 키스도 못해보고 살아온 결혼생활,
마구잡이 생각없는 결혼을 자식때문에 구시대여성처럼 참고
살아준 너!
큰아들이 사관학교에 가던날, 너는 그 기쁨만으로 네 고생과
고통을 상쇄시키고 ,남편을 불쌍하다며,(그 신랑 "자식 잘키워줘서 고맙다고 "손잡던 그날 모든것을 녹여버린 네 가슴을 나는
안다. 그 회안을 . .

이제 네가 돌아오면 , 예전처럼 만나면 싸우는 소녀들은
아니겠지? 이 천지에 자매는 너와 나 둘이잖아.
내가 아무것도 해준것 없는 언니 라 미안 하단다,늘 말은 못해도
너두 큰꿈을 가지고 나간 길이니 이제
우리모두 그 고통과 설음의 시절을 뛰어넘어 다시 만날때면.
서로 고맙게 생각하며 지내자!

생각나니?
그옛날 너와내가 닮은 얼굴이 아닌 각각의 얼굴이라 쌍데이트
하던생각 그때 우린 친구간이라고 남자애들을 속엿었지?
그때가 좋았었지 그래도 . .
이제 이곳 염려는 말아라.
엄마와 이모인 내가 너의 아들 휴가 나오면 대구에 가서
잘돌보아줄테니까
몸건강히 지내고 돌아와 웃으며, 곧 할머니가 되어지는 우리 나이지만 에전처럼 쌍데이트를 즐기던 시절처럼 정답게 지내자꾸나

안녕 2000년 8월 말쯤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