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새벽녁까지 코골이 소리가 요란한 남편의 단잠을 깨우기가 못내 미안치만,
모처럼 개학을 해서 늦잠을 자려는 아들녀석을 흔들기가 더 미안타.
하지만 늦깍이 학생인 엄마의 사정을 어제밤에 미리 얘기 해 논터라, 라디오 볼륨을
올리고 귀염둥이 강아지에게 형 일어나게 뽀뽀 좀 하라고 시켰더니 온갖 재롱에
아들은 덜 떠지는 눈을 비비면서도 내 사정을 이해해 준다.
아침밥 해 먹고 남편기사까지 대동하여 간 학교는 입시보는 학교앞처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식구들 덕분에 모처럼 편안히 도착하여 식구들을 뒤로 한채 여유있는 걸음으로
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평소엔 시어머니 수발에 학교가기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운(?)이 좋았던 덕에 이번 수업주간은 어머님께서 동서집에 가 계셔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한 주가 될 것 같다.
내일모레면 쉬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웬 공부를 한다고 수선이냐고
시댁 식구들이 걱정반 한심스러움반으로 내가 용기를 낸 것에 대해,
격려보다는 질타가 더 많지만,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와 십수년을 한집에서 머리 맞대고
신경 싸움아닌 싸움을 하다보니, 어머니보다 내가 어머니 연세로 동화되는 것을
어느날 부터인가 깨닫게 되는 순간,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겉늙어 버린 나의 시간을
찾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세월이 벌써 사년이 흘러 사학년이 되었다.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보다는 식구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도와줬던 것이 정말 고맙다.
특히 우리 남편이 물심양면의 외조탓이 아니런가!
첫 수업에 들어오신 교수님께서는 육순이 넘으신 학장님께서 직접 강의를 맡으셨다.
더디고 느린 말씀을 듣느라 쳐지는 기분이었지만, 초록은 동색이랄까
그분의 강의 내용은 우리 국문학도들로서의 생활관과 인생관에 거쳐 자신이 젊어서
용기백배 했던 때의 장단점과 지금의 노학장으로서의 인생관을 토로 하심은
어떤 강의보다도 가슴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가끔 선문답으로 늙는다는 것에대한 회의와 허성 세월을 하는 것만 같은 초조함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어찌 할 바 몰랐었는데 그 노교수의 해답은 아주 명쾌했다.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것이 비록 자신에게 여러 불편함과 변화를 감수하게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았던것 같다.
어려운 일을 해결함에 있어 현명한 결정으로 남에게 즐거움이나 희망을 줄 수 가 있어
좋고 그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원숙해 짐을 느껴 뿌듯함도 느껴지나
이 또한 일석이조가 아닌가
모든일에 앙앙불락하지말고 나를 낮은 데로 임하도록 하여 겸손하게 사는 것이
한지혜라고 말씀하셨다.
또 스스로 노력하여 작은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보는 기쁨을 만들어 보라' 하셨다
교수이기보다 인생의선배에게 덕담을 듣던 양 고개가 끄덕여 지는 지혜의 수업이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임이 분명한데도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다투기를 두려워
하질 못하니 언제 선배님의 고견을 쫓을 수 있을까!
아홉시간을 좁은 책상에 앉아 젊고 지적인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며 배움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마라던 선인의 말씀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