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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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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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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


BY zinnia 2002-07-19

학교 다닐 적에는 <칼>이란 별명을 가졌던 나 였건만...
점점 무디어져 가던 칼날이 이제 드디어 두부조차 썰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요며칠간은 뇌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보초를 세우고 다니느라 몇살은 더 먹어버린 기분이다.

어디 외출을 한번 하려면 가스를 잠갔는지.. 창문이 걸렸는지...빠뜨린건 없는지...를 확인하고서도 갸우뚱 하며 현관을 나선다.
아니나 다를까.
몇발짝이나 떼었을까?... 어김없이 최소한 한번이상은 발걸음을 돌려야 하니 남편의 핀잔도 이제 귀에 익은 콧노래가 되어 버렸다.

출산과 더불어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서 한번은,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갈것을 눈치채고 먼저 신발부터 신고 광분하는 아들을 앞세우고 근처 마트엘 다녀왔다.
열쇠를 주섬주섬 꺼내들고 구멍에 맞춰 돌리니 "찰칵!"경쾌한 소리가 난다.
재빠르게 손잡이를 돌렸는데... 이상하게도 문이 주인을 못알아 본다.
갸우뚱 하며 반사적으로 다시 열쇠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러면 그렇지 현관문이 무슨 건망증이 있어서 주인을 못알아 보겠는가...라고 생각하는순간 눈앞이 캄캄해 지며 두눈이 딱 감긴다.
오장육부에서 나오는 한숨소리가 내가 애초에 문을 걸고 가지 않았음을 질책한다.

한시간 남짓 걸린 시간동안 가져갈것은 없겠지만 잃을것은 끝없는 우리집을 잘 지켜주었을 누군가에게 한없이 감사를 표했다.
감사의 마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따르릉~~~"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거기 어버버씨 계신가요?"
"네... 제가 어버버 인데요.."
"네, 여기는 칼같은마트 인데요 혹시 지갑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웬 봉창!! 내가 아무리 어버버 이지만 피같은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그럴리가 없지.

"아니요... " 그래도 혹시나 하여 "잠깐만요, 확인해 볼께요"

헉! 가방을 뒤집어도 나의 애첩이 안보인다.

"음.. 어버버표 갈색 반지갑 인가요"
"네"

그날따라 은행에 들러서 지갑엔 평소보다 많은양의 현금이 있었다.
점점 커지는 걱정이 혈액을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마트로 향했다.

다행히 내가 배달접수를 시키고 난 직후 담당 아가씨가 지갑을 발견해서 고객카드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번엔 사실 딴맘을 먹고 지갑을 챙겼을 수도 있었을 그 아가씨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감사를 표했다.

난 언제쯤에나 누군가 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아본단 말인가?
울아들이 장성하면 내가 "훌륭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들을 수 있을는지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