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아 놓은 이불 홑청을 개키려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하기엔 너무 넓다.
그것을 보신 어머님께서 도와 주시려고 방에서 나오셨다.
서로 마주보며 홑청을 접어가고 있는데 생각처럼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질 않는다.
그러자 어머님께서는
"그럼 그렇지.너랑 나랑 맘이 잘 안 맞는데 이게 맞아 떨어지기가 어렵지."하신다.
나는 금세 샐쪽한 척 표정을 만들며
"이게 딱 맞아 떨어지는 고부간이 얼마나 되겠어요.그렇게 맞춰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그러니 안 맞다고 그리 서운해 마세요."라고 말씀 드린다.
어머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나의 그런 반응이 밉지만은 않으신 듯
"그래,네 말이 맞다.내 자식하고도 아마 안 맞아 떨어질끼다."라고 답해 주신다.


예전 같았으면 어머님의 그런 말씀이 정말 서운하기만 해서 아무런 대답도 않고 속으로만 속상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과 십 수년 함께 산 세월의 두께 때문인지 이젠 그렇게 어물쩍 웃음으로 넘기는 여유가 생긴다.


결혼해서 처음 얼마간은 조금이라도 서운한 말씀을 하시면 겉으로 내색도 못하고 속앓이를 했었다.
워낙 바지런 하시고 깔끔하신 시어머님의 눈에는 느릿느릿하고 어둔스러워 보이는 며느리가 답답하셨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한 말씀 듣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억울하기도 하였으나 아직 새댁인 처지에 차마 뭐라 변명조차 하기 어려웠으니 그저 속으로만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 억울함을 해소 했던 것 같다.


철없는 새댁 시절 친정어머니께서 속상해 하실 줄도 모르고 그런 시집살이를 미주알 고주알 다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그럴 때는 무조건 잘못을 인정하고 "예"라고 말씀 드리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이 잘 안되었다.
억울하다고 생각 되는 일에는 자꾸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데 하물며 "예,제 잘못입니다."라고 무조건적인 사죄를 드리기엔 께름칙한 속 좁음이 자꾸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말대답같은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싸늘하게 맘을 닫고 돌아서시는 어머님을 몇 번 뵌 뒤로는 그 뒷감당보다는 차라리 사죄 드리는 것이 내 신상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무슨 영수증인가를 찾으시는데 금방 찾아 내지 못하는 나에게
"젊은 사람이 왜 저리 정신이 없을꼬,저러다 나이 들면 어쩔려구 저러나..."하시는데
"네,어머님.제가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이러다 어머님 연세가 되면 저는 제대로 된 생활이나 할런 지 걱정이에요.그러고 보면 어머님은 정말 대단하세요.완전 컴퓨터시라니깐요.시대를 잘 타고 나셨으면 세상에 이름을 떨치셨을건데...그쵸?"라고 답해 드렸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어머님의 기분까지 구름처럼 붕 띄워 드리는 놀라운 말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일흔 일곱의 어머님은 아직도 기억력이며,계산력이 굉장히 뛰어 나시다.열 둘이나 되는 손주들의 생일이나 조상님 제사 등도 절대 놓치지 않고 기억하시고 심지어는 내 동생 생일까지도 정확하게 기억을 하신다.
그러니 안 그래도 깜빡 깜빡 잘 하는 나에겐 어머님의 그런 능력이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나의 달라진 모습에 어머님은 못마땅해 하시던 표정을 완전히 거두시더니 흐뭇한 미소를 보내신다.
꾸지람 하시려다가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신 것이다.


조금씩 어머님 대하기에 익숙해진 나는 점점 놀라운 변화를 해 나간다.
반찬이 맛없다 하시면 "왜 어머님처럼 안 되는 지 모르겠어요.앞으로는 어머님이 좀 해 주세요.애비도,아이들도 어머님 하신 것만 맛있다고 하니 할 수 없네요."하면서 어머님 손 맛을 치켜 드리고 당신 손으로 직접 반찬 만드시는 수고를 하시게끔 부려 먹는 얄미운 며느리가 된다.
그러나 그 수고를 하시는 어머님께서도 결코 힘들다 생각지 않으시고 기쁘게 하시는 것 같다.


늘 일을 둘러 하시고 준비성이 좋으신 어머님.
아무리 따라 가려고 애써도 늘 부족할 수 밖에 없는 며느리라 이제는 그냥 내 게으름을 어머님께 자랑 삼아 광고하기에 이르렀다.
한 번은 부엌을 좀 더 깨끗이 하라는 말씀에
"어머님.저도 어머님만큼만 아니 어머님 반만큼만이라도 닮고 싶어요.그런데 그렇게 타고 나질 않은 제가 어머님 따라 갈려면 진이 다 빠져 나갈 거예요.그러니 힘드시더라도 지금처럼 그렇게 제게 맞춰 주시고 절 참아 주셔요."라고 부탁 드렸다.
어머님을 잘 참아 주시는 좋은 분이라고 말씀 드리면서 양보를 구하는 나의 지혜로움이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했으니 정말 넉살도 좋아졌다.
그러자 어머님은
"그래,나보다 니가 훨씬 낫다.너같은 성격이 좋단다.건강에도 좋고...난 너무 예민하고 일에도 매여 살아서 이젠 병 밖에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라며 힘없이 말씀하신다.
"아니에요,그래도 어머님이 그만큼 열심히 사셔서 지금 이만큼이라도 일구신 거잖아요."
나도 고마움과 죄송함에 황급히 어머님을 위로해 드렸다.


얼마 전 셋째 형님(시누님) 댁에 다녀 오신 어머님께서 형님들과 함께 나눈 말씀이라며 들려 주시기를 여태껏 어머님이 희생으로 열심히 사신 그 복으로 좋은 며느리 본 것이라고 하셨다.
어찌나 민망하고 양심에 걸리던지 차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듣기가 부끄러워 얼른 다른 말로 이야기를 돌리려고 허둥댔었다.


어머님 기분만 좋으시면 꼬물 꼬물 내 속에서 장난기가 발동해서 웃음을 선물해 드린다.
하지만 몸이 편찮아지셔서 우울해 지시면 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던 처세술도 빛을 잃고 초라해진다.
자칫 눈치없이 행동하다 괜히 무안만 당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갈수록 그저 무던한 곰보다는 꾀부릴 줄도 아는 여우같은 며느리가 고부관계를 보다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만 여우기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어머님께도 그런 여우노릇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어머님께 남아 있는 나의 가장 큰 바람은 건강이다.
어깨가,다리가,허리가 아프셔서 진통제를 드시는 날이 조금이라도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당신께 허락된 남아 있는 인생 길을 고단하지 않게 걸어 가실 수만 있다면 어리숙하기만 하던 며느리는 얼마든지 능수능란한 고단수의 며느리 처세술로 어머님 마음을 녹아 내리게 해 드릴 수 있으련만...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자신을 고단수라고 생각하는 며느리...그 위엔 그것을 알고도 모른척 받아 주는 더 고단수의 시어머님이 계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