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명칭 소고
연애결혼한 나는 우리 집안의 혁명가다. 할아버지께서는 계집애 잘 못 키워 집안 망했다고 어찌나 슬퍼하셨는지...첫 아이 낳고 살 때까지 인사 여쭙는 손주 사위에게 따스한 눈길 한 번 아니 주셨던 할아버지, 하지만 슬큼 뒷통수를 훑어 내리시며 안도하시던 작은 숨기운을 내가 노칠쏜가? 내가 혼자 찾아 뵈올 때는 꼭 '주서방 건강하냐? 절대 순종해라' '주씨 집안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부의 말씀이셨다. 우리가 연애할 때 우린 서로 선생님이라 불렀다. 물론 내가 훈장을 할 때여서 듣던 호칭이라 어색하지도 않았지만, 옛 어른들이 낭자! 도령! 하고 집안에선 부인! 대감! 하던 시절엔 어떠했을까? **씨! 라는 칭호는 너무 의례적이라서 사랑이 배이질 않은 것 같고, 그대! 라는 단어는 詩집 속에서 간직해야 할 소중한 말 같아 마구잡이로 쓰기가 아깝고, 김소월의 님! 이란 말이 거침없이 나오던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음란하거나 타락하는게 아닌가 두근거리기도 했었다. 편지 머리에 당신! 이라고 써 놓고 얼마나 어색하고 쑥스럽던지...열애 수년 지난 후에 겨우 그리 해 보았다. 여보! 소리가 부끄러워 결혼 후 한동안까지 아이를 낳고도 선생님이라 불렀다. 아직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여보! 소리가 야무지게 나오지를 않는다. 언제부턴가 자기! 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촌수도 없는 아빠! 라는 말이 떠돌았다. 남편이 아빠라니 두드러기가 날려고 한다. 딸 아이가 중학생일 때 어떤 남자애를 보고 \'오빠\'라고 불렀다. 집에와서 몹시 야단을 쳤다. '어찌 그리 오빠 소리가 잘 나오느냐?' '몇촌 오빠냐? 도대체...' 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그럼 무어라고 해요?' 그리고 보니 대답도 궁했다. 오빠가 아빠되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어정쩡하니까 형! 이라고 불렀다. 어느덧 님이여! 하면서 바르르 떨며 감추어 놓은 일기장 속에 숨어있던 말이 님아! 하면서 튀어나와 나딩굴었다. 이게 웬일인가? 그건 너!~ 하면서 이젠 간단한 너! 로 바뀐 것이다. you! 황제같던 아버지란 칭호의 위엄이 땅바닥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사랑하는 애인의 칭호도 너! 로, 전락한건지, 평등해 진건지? 요즈음은 어떤가? 야! 넌 내꺼야! 이젠 모두가 소유욕을 채우는 도구일 뿐인가? 니꺼! 내꺼! 그런데 그 소유는 분명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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