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을 살았던 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설속 주인공들이 자기가 처한 공간이 전부인듯 우물보다 좁아보이던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바둥바둥거릴때 조금만 더 눈을 높이 들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탓했었다. 그랬는데 막상 내가 살던 곳을 훌훌 털고 떠나려니 걸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이가 받아들일 여러가지 변화와 그리고 그 동안 어렵게 다져놓았던 일자리와 피붙이보다도 더 살겨웠던 이웃들과의 헤어짐... ,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더구나 출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다 접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살아보자 하고 떠나는 길이니 더 많이 힘이 들었다.
어쨋든 나는 떠나야 했고 그리고 대구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고 선언하고 시집으로 들어왔다. 정말 이곳에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다. 모든 상황들이 최악인 상태에서 돌아 온 시집이니 반가운 귀향일리는 만무하다. 우선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제일 컸다. 그런데로 아이들은 말없이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였고 어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언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될런지 아직은 미지수다.
인생에 있어서 몇 번의 고비가 온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발버둥치다가는 끝없는 심연속으로 침몰할 지 모른다.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푸라기 하나 잡을 힘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난 신기하게도 살아 꿈틀거린다. 이미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아이들과 살아야 한다는 내 의지 이상의 초월적인 힘이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십몇년만에 돌아 온 고향은 생소하기만 하였다. 어디든 낯설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다가 미친듯이 그리워졌다. 숨이 막혀 푸른 들을 찾아 끊임없이 달려도 보았다. 그렇게 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이제 어느 정도 길들여진것도 같다.
살아가는 일은 누군가에게 나를 길들이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것들과 길들여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마도 나는 잘해낼 수 있으리라. 아이들이 옆에있고 그리고 이렇게 막연하게나마 누군가를 향하여 쏟아낼 수 있는 여지를 그래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행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