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전화벨이 울렸다
초등 학교 동창 남학생이 였다
우리는 초등 학교 모임을 남학생들 따로 여학생들 따로 만나는데
일년에 한번쯤은 함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맨 처음 만날 때는
호기심에 마음까지 설레이고 우리 여학생들은 미리 한장소 에서
만나 함께 갔었다.
수십년을 뛰어넘는 순간이였지만 어렵다거나 거부감이 일기는
커녕 어제 헤여진 친구처럼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한동네 에서 함께 자랐고 어떤 아이는 중학교 까지 줄곧 함께
다녔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고 그저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돌아 왔는데 직장 다니는 남자 들을 생각
해서 토요일날 만났다. 그것도 연말에나...
그러다가 연말도 아니였는데 중학교때 생물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고 모이자고 했다. 장소는 강남의 장어구이 집이였는데
내가 강남에 살고 있어서 거리도 가까웠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오신다는데 빠질수도 없었다. 나는 여자 친구와 미리 우리집쪽
에서 만나서 함께 들어 갔다. 예약 해 놓은 방에 선생님이 앉아
계시고 양쪽으로 일찍 온 남학생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선생님 앞에 그 옛날 처럼 다소곳이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선생님은 별로 늙으신것 같지 않고
오히려 제자인 남학생들이 늙어 보였다. 어쩌면 같이 늙어 간다
더니 중년이된 제자들이 선생님 동생같이 보이기도 했다.
생물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번거롭게 먹을 일이 아니라 한끼에 딱 한알씩
약을 먹고 살수 있으면 여자들이 음식 만드는 수고도 들지 않고
얼마나 편하겠냐며 앞으로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며 이미 수
십년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생물 선생님은 별로 좋아
하지 않았지만 말씀 만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주 앉아서
그때 일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있는데 밖에서 시끌벅적 남학생
몇이 들어 왔다. 먼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모두 머리만 숙여 인사
하는데 한 아이만 넙죽 큰 절을 올렸다. 그 아이는 유명한 S
기업에서 전무 이사로 승진한 남자 아이 였다. 모두들 회사에
서 명퇴를 당하기도 해서 우울한 소식도 많았는데 그 친구 소식
은 모두에게 부러움으로 다가 오기도 했다. 나는 그날 느꼈다
시골 출신이고 그 기업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
서 그 자리 까지 갈수 있었나를... 현재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남자 아이도 많았는데 아무도 큰절을 올리지 않고 그저 정중히
머리 숙여 인사만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더니 선생님께 공손히
술을 따라 드리고 소식을 들으신 선생님은 축하 한다며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셨다. 나에게도 술을 따라 주셨는데 나는 억지로
마셔야 소주 한잔의 실력이라 잠시 망설였는데 그 아이는 잽싸게
대신 받겠습니다, 하며 내 대신 술을 받아 주었다. 그 전에 이미
한잔을 받은 나는 너무 고맙기도 하고 센스 있는 행동에 나름대
로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고 승진 할수 있는 원동력이 이런점이
아닐까 순간 느끼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선생님 자제
분이 살고 있는 곳 까지 한 남학생이 모시고 떠났고 우리들은
커피숍으로 들어 갔는데 남학생들이 우리들에게 불만을 털어 놓
기 시작했다. 함께 모이자면 나오지도 않고 여학생끼리 만나고
게다가 오랫만에 나와도 저녁만 먹고 일찍 가버린다고 투덜댔다
누가 이뻐서 만나자고 하냐, 같이 늙어 가면서 대화나 하자는거
지, 등등 그동안 쌓인 불만을 기회에 털어 놓는것 같았다.
얘,너희는 항상 저녁에 만나니까 그렇지 .아니 나이들어 저녁
모임도 못하나.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네 부인이 초등학교 모임 한다고 매달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 오면 기분 좋겠니?
순간 약간 뜸을 들이더니 그건 좀 껄적지근 할것 같네,
뭐라고, 남자 마음은 욕심꾸러기이고 제 멎대로다.
자기 부인이 그러면 싫고 남이 그러면 괜찮은가.
갑자기 계면쩍은듯 우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이 진짜 남자의 속 마음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남자의
마음이다.